앙겔라 메르켈 시대의 독일사민당의 모델은? Le monde

"앙겔라 메르켈의 꿈은 독일화된 유럽인가?"

[독일]
[앙겔라 메르켈]

메르켈이 3선에 성공한 지금, 독일 사민당의 지리멸렬함을 보면 떠오르는 역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콘라트 아데나워 시대에, 쿠르트 슈마허가 이끌었던 독일 사민당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사민당은 아데나워의 주요 정책에 반대했지만, 현재의 독일 역사는 결국 아데나워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독 탄생 초기, 독일연방공화국은 아직 완전한 주권국가가 아니었다. 1955년까지 하원을 통과한 결의안도 연합국 최고사령관의 서명을 받아야만 법으로 유효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아데나워는 친서방정책을 실천해 나갔다. 1949년 11월 22일, 아데나워는 연합국과 페테르베르크 협약을 체결, 연합국과 함께 루르를 관할하기로 했다. 이에 슈마허는 아데나워가 "연합국 총리"라 비난하면서, 서독이 더 이상 양보를 하지 않아야하고, 주권 국가로서의 권리를 요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원리원칙적 주장은 당시의 연합국과 서독간의 힘의 관계로 보았을 때,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1950년, 아데나워는 프랑스와 베네룩스3국,이탈리아와 서독이 함께 유럽석탄공동체 ECSC 를 만들자는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의 제안을 수용했다. 유럽석탄공동체는 오늘날의 유럽연합의 초석이 된 기구로, 이렇게 슈망과 아데나워는 유럽연합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슈마허와 독일사민당은 슈망계획은 독일 산업을 손에 넣으려는 프랑스의 자본가들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독일 재무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아데나워는 서독이 1949년의 대서양조약으로부터 탄생한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는 재무장이 서독이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이에 대해 독일사민당은 독일이 재무장을 하게되면, 독일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면서 재무장에 반대했다. 그들은 독일 방위는 나토에 맡겨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군대에 입대할 의사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그들의 집단안보 계획은 너무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1952년 3월 10일, 스탈린이 독일은 통일될 수 있고, 중립 국가로 남아 재무장할 수도 있다고 제안해 온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였다. 아데나워는 그 제안을 즉각 거절했다. 그는 친서방 정책을 고수할 것을 재확인하고, 만약 독일이 중립 국가가 되면, 소련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공산화될 가능성 높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독일은 1954년 10월에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동시에 점령규약이 취소되면서, 이제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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