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 프랑스 공산당에 이석기 같은 인물이 있었나? Le monde

김성준 앵커의 한마디

[프랑스 공산당]

1930년대 프랑스 공산당 관련 글을 읽다가, 최근의 통합진보당 이석기의 알오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있어서 이를 소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에는 모스크바의 코민테른이 파견한 오이겐 프리드가 있었고, 그가 지하에서 은밀하게 프랑스 공산당을 지배했다고 한다. 프랑스 공산당의 지도체제는 이중 구조였고, 모리스 토레즈 같은 공개된 인물이 지도하는 조직을 프리드의 조직이 배후에서 지도하는 형식이었다. 이렇게 30년대의 프랑스 공산당은 프리드에 의해서 모스크바와 스탈린에 충성하는 볼셰비키 정당으로 변모했다. 

만약 이번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국정원의 수사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이석기의 알오와 통합진보당은 21세기 진보정당이기 보다는 1930년대식 스탈린주의적 반합법 반지하 볼셰비키적 정당에 가까운 당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 되겠다. 


오이겐 프리드

Eugen Fried

1900년 3월 13일- 1943년 8월 17일

오이겐 프리드는 프랑스 공산당에 파견된 제3인터내셔널의 대리인이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프리드를 1930년부터 1939년까지 프랑스 공산당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간주한다.

슬로바키아의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리드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그는 19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벨라 쿤이 주도하는 공산주의자들의 권력 장악 당시부터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로 추방당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주요 간부로 빠르게 성장했다. 1929년 그는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옛 지도부를 타도하는 작업에 가담, 소련에 보다 충성하는 지도부를 세웠다. 하지만 헝가리 출신이자 유대인이었던 프리드는 당 총서기장 직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1930년 모스크바로 가서, 코민테른 중앙기구에 가담했다. 우크라이나,스위스,헝가리 등지에서 활동한 이후, 드미트리 마누일스키가 프리드를 프랑스를 파견했고, 이는 위기에 빠진 프랑스 공산당을 스탈린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1931년에 파리에 몰래 잠입, 프랑스 공산당의 전권을 장악했다. 1931년 여름부터, 클레망 동지라 불렸던 프리드는 분파주의와의 전쟁에 돌입, 프랑스 공산당의 2명의 주요 지도자인 앙리 바르베와 피레르 세로를 정치국에서 몰아냈다. 그는 모르스 토레즈,자크 뒤클로,브누아 프랑숑,앙드레 마르티,모리스 트레앙으로 구성된 새 지도부를 구성했다. 이 새 지도부가 이후 30년동안 프랑스 공산당을 주도했다. 당 총서기장 자리에는 그는 모리스 토레즈를 선호했고, 이는 그가 코민테른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1934년, 그는 모리스 토레즈의 옛 애인 오로르와 동거를 시작했다. 프리드는 모리스 토레즈 보다 실제로 높은 지위에 있었고, 크레믈린으로부터의 명령을 토레즈에게 하달했다. 프리드는 주요 간부들을 교육,선발,진급 그리고 감시하기 위해서 간부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당의 경찰은 당에 군사적 규율을 강제했다. 각 간부들은 74개에 달하는 신상 명세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했고, 여기에는 그가 받은 교육,독서 뿐만아니라 가족,사생활까지 막라하는 것이었다.

1939년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브뤼셀에서 서유럽 전역의 지하 코민테른 운동을 지도했다. 브뤼셀의 프랑스 공산당 세포조직은 자크 뒤클로가 지도했다. 뒤클로는 단파 라디오를 가지고 코민테른과 연락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 지도부 3인방은 자크 뒤클로와 모리스 토레즈 그리고 샤를 티옹이었다. 토레즈는 독소불가침 조약 체결 직후 모스크바로 도주했고, 티옹은 프랑스에서 공산주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지도했다.

오이겐 프리드는 1943년에 독일 게쉬타포에 의해서 암살당했다.

오이겐 프리드의 주도하에서 프랑스 공산당은 소련과 스탈린에 충성하는 정당으로 변모했다. 동시에 당의 외부와 내부로부터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지하조직 건설에 착수했다.

공산당 지도부의 행동에는 비밀과 세분화가 원칙이 되었다. 이것이 1930년대 프랑스 공산당의 이중 지도체제로 귀결되었다. 공개 조직으로는 서기장,정치국,중앙위,당원회의를 두고, 지하 비공개 조직으로 실질적인 지도부들이 있었고, 이들은 모스크바가 직접 선발한 믿을만한 인물들이었다. (절대적인 충성, 순응성,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끼지 않는 것)

토레즈,뒤클로,프랑숑,마르티 옆에서 프리드의 조직이 당의 정치 노선에서부터 공산당학교 교육, 선거 후보까지 모든 것을 강제하고 승인했다. 



덧글

  • 솔까역사 2013/09/13 15:49 # 답글

    이렇게 비교를 하니 더 재미있군요.
  • 파리13구 2013/09/13 16:03 #

    ^^
  • 잉여인간 2013/09/13 16:06 # 삭제 답글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같은 경우 2002년 대선이전까지만 하더라도 PD활동가들과 시민운동가 참여한 정책정당에 가까웠어요. 대선 9개월전즈음에 거기에 2개의 통합노총이 본격적으로 합류했죠. 말마따나 NL이 파고 들어오기 전에-그당시에 NL은 오히려 민노당을 개량주의자라고 싫어했습니다.쯥.-는 나름 정책정당의 구성요소를 갖추고 공공의료제, 공공복지. 지자체 세율자율연동제등 현재 제법 주목받고 있는 정책기반들도 만들었었구요.

    NL세는 꾸준히 커졌지만 요즘 문제되는 것들이 특히 커진게 진보신당 분당으로 정책연구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탈한 이후로 정책정당의 모습이 부서지고 완전 이데올로기 정당의 모습으로 변해갔죠. 가능성이 있다면 프리드 같은 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가 이쯤일 겁니다.

    다만 애당초 저쪽진영애들은 사실 2002년의 유산을 파먹고 살아왔고 그 유산이 바닥난 것도 모자라 남긴 이미지마저 불살라버린 쟤들은 뭐, 이젠 끝났다고 봐도 될 듯요. 덕분에 한국 진짜 진보운동은 정말 1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ㄲㄲㄲ
  • 파리13구 2013/09/13 16:15 #

    감사합니다. ^^
  • Real 2013/09/13 17:28 # 답글

    1940년 서부전역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이적행위를 직접적으로 시도했죠. 예를 들면 선전물 공세나 무기파괴를 했었다고 서적인 =전격전의 전설=에서 나오더군요.
  • 파리13구 2013/09/14 04:18 #

    아마도 모스크바의 지령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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