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는 어떻게 독자와 만났을까?"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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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은 헤로도토스를 어떻게 읽었을까?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에서, 알파벳 문자가 확산 중에 있었지만, 여전히 문화를 지배하던 것은 구술문화였다. 정보 전달의 주요 수단이 글이 아니라 말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오늘날과는 다르게 읽혔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당시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처했던 상황은 어떤 것이었을까?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

역사가는 직업도 아니었고, 기념비적 업적을 세운 것도 아니었고, 발견 혹은 전승해야 할 지식도 불분명했다. 그들은 당시의 지식 시장에 늦게 진출했고, 역사가가 역사책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관심있는 독자를 찾는다는 보장이 없었고, 설혹 관심있는 독자가 있더라도 인쇄 수단의 결여로 책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시인,철학자,연설가와는 달리, 역사가는 연예인 혹은 선생 같은 독특한 직업군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사회 내부적으로 인정받은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이같은 난관 속에서 헤로도토스는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모미글리아노 Momigliano 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역사가들은 문자 그대로 청중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 관한 대중적인 낭독회를 열면서 말이다.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그것을 정기적으로 했지만, 투키디데스는 이것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진실에 위배된다고 비판했고, 본인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서 역사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같은 헤로도토스식의 구술문화적 역사 작품의 공개 강연회 관련 정보는 기원전 5세기-4세기 보다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4세기 동안에 더 풍부하게 접할 수 있다. 고대에 역사 작품의 공개 낭독회가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이고, 이같은 역사 지식의 확산이 개별 역사 저작의 필사본 보급에 선행했거나 이와 동시에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령, 서기 2세기, 소피스트이자 철학자인 루시안 Lucian 은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역사를 올림피아의 대규모 청중들 앞에서 낭송했다는 사실을 당연시했고, 이는 자신의 작품을 가장 빠르고 경제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이 낭송회에서 청중들은 매우 만족했고, 그의 역사 9권에 각각 9명의 무사이 신의 이름을 부여했다고 한다. 투키디데스도 그 청중들 중에 있었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같은 역사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서기 2세기초의 다른 증언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강연 대가로 코린트에서 돈을 요구했고,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역사학의 아버지는 테베에서 강연을 하고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상에 따르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문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구술적 전승,강연,낭송회 같은 구술문화가 여전히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겠다.



덧글

  • 천하귀남 2013/08/22 14:05 # 답글

    아무래도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는 이야기꾼 형태의 구술강연으로 수익을 얻는게 일반적이었나 보군요.
  • 파리13구 2013/08/22 14:15 #

    작가는 책을 팔아서 먹고사는 것인데, 책을 필사본으로 만들어서는 작가가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추정합니다.

    따라서 작가는 책판매가 아닌,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방법이 대중강연이 아니었나 합니다.
  • 11 2013/08/22 14:28 # 삭제 답글

    테베에서 강연하고 돈을 요구했다 -> 이러니까 무슨 협박강매하는거 같습니다 ㅋㅋㅋ
  • 파리13구 2013/08/22 14:30 #

    강연료를 요구했다는 것 같습니다. ^^
  • 파파라치 2013/08/22 15:56 # 답글

    그래서 그런지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보다 훨씬 재밌지요. 거짓말이 좀 섞여 있어서 그렇지 ㅎㅎ
  • 파리13구 2013/08/22 16:06 #

    과연 헤로도토스가 문서 사료를 얼마나 검토했는지 의문입니다.

    문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말이죠.

    따라서 헤로도토스가 구술 자료에 의거해서 역사를 썼고,
    그 과정에서 자료가 입맛에 맞게 가공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재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 HAVETO 2013/08/22 17:21 # 답글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꼭 읽어보고 싶은데 그 방대한 두께에 손이 가지 않더군요. 특히 읽을 시간이 없고..

    저는 헤로도토스의 책도 읽어보고 싶지만 폴리비오스의 역사도 꼭 읽어보고싶습니다.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 같았습니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이 폴리비오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데, 한국도 대통령제를 수용한 이상 한국인에게도 매우 유의미할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에는 번역된 책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국대 천병희 교수님이 헤로도토스 역사는 물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 여러 그리스-로마 고전들을 국내 번역하셨는데 폴리비오스의 책도 번역해주셨음 좋겠네요..
  • 파리13구 2013/08/22 19:20 #

    네 기대가 됩니다
  • 명림어수 2013/08/23 00:19 # 삭제 답글

    저 "역사" 번역판에 붙은 해설을 보면,
    헤로도토스가 아테네에서 발표를 하고 1탈렌트를 받았다는 말이 있더군요.
    1 탈렌트가 얼마정도 일지는 모르겠네요.
  • 파리13구 2013/08/23 05:36 #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3/08/23 10:27 #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리스 탈렌트는 은등의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고 하네요. 은 1킬로가 414달러고, 1 탈렌트 은은 약 26킬로그램= 약 1만불 (1만7백6십불) 정도라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책 한권값이 거의 한달 월급보다 많을수도 있겠군요;; (아 책이 아니라 강연료이려나요).
    ====
    주인장님이 쓰신 후속글을 보니 은가치가 더 뛰었군요. 상당히 더 비싸졌습니다.
  • 파리13구 2013/08/26 10:42 #

    /역사관심 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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