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인가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공포인가?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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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로스,트리테미우스 그리고 디지털 치매


만프레드 슈피처의 디지털 치매-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가 인간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 등에 의존하는 우리가 점점 바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치매’란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뇌 기능이 손상되어 어느 순간부터 인지 기능을 상실하는 치매의 일종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디지털 기기가 우리의 기억 능력을 감퇴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디지털 치매 같은 책을 보면서,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기술문화의 확산에 반대하는 전통문화의 견제라는 맥락에서 그렇다.

책,종이신문 등의 아날로그적 인쇄문화에 의존하던 인류가 인터넷,정보기술에 기반한 탈-인쇄문화, 즉 디지털 문화를 적극수용하면서

디지털 이전의 문화와 디지털 문화가 충돌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옛문화의 지지자들이 새로운 문화를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역사상, 중요한 미디어의 교체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논쟁이 있었다.

바로 알파벳 혁명이 있었던 고대 그리스의 기원전 5세기가 그랬고, 구텐베르크 인쇄혁명이 있었던 16세기 유럽이 그랬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는 알파벳이라는 새로운 문자 미디어에 대한 전통문화의 비판이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문제 삼는 것도 바로 새로운 미디어인 문자가 기억을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에 따르면, 발명의 신으로 간주되는 헤르메스(그리스 신화) 혹은 토트(이집트 신화)가 파라오 타무스에게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했을 때, 이 파라오가 이 전대미문의 기술[문자]로 인해 인류가 과거같으면 잊었을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칭찬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타무스는 완전히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재능 있는 토트여",그가 말하길, "기억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야만 하는 위대한 선물일세. [하지만] 자네의 발명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기억을 훈련시키려 하지 않을 걸세. 그들은 사물을 내면적 노력을 통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외부 장치[문자]에 의지 해서만 기억하려고 들 걸세."

타무스의 고민은 다음과 같았다. 즉 쓰기란, 다른 새로운 기술 발명처럼, 인간의 능력을 둔감하게 만들 것이란 것이다. 마치 쓰기가 그것을 대체하고 보완할 것처럼 말이다. 쓰기는 그것이 인류에게 무감각한 영혼, 정신의 묘사, 광물성 기억을 제공함으로써 정신의 힘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위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움베트로 에코에 따르면 우리는 매우 명확한 2가지 이유 때문에 타무스에 고민에 공감하지 않는다.

첫째로, 우리는 책들이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이와는 반대로, 책들은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장치들이다.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같은 대작이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쓰기의 발명 덕택이다.

둘째로, 만약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어떤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들의 기억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었었다면, 쓰기의 발명 이후에는, 그들은 또한 책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들의 기억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책들은 기억에 도전하고, 기억을 개선시킨다 : 책들은 기억을 무디게 하지 않는다.

결국, 파라오는 영원한 공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그것은 바로 새로운 기술적 업적이 우리가 가치있고 소중한 것으로 간주하는 어떤 것을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 말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이 유럽을 강타한 15세기말 이후의 유럽에서도 새로운 파라오가 등장해서 새로운 미디어 기술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었다. 

15세기말 독일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으로 출판문화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인쇄술의 발명과 더불어, 이전까지 책의 생산의 중심이었던 수도원 필사문화 scribal culture / Manuscript culture 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인쇄술 때문에 필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책 “The Book In the Renaissance”의 저자 앤드류 패티그리 Andrew Pettegree 의 지적에 따르면, 인쇄술은 과거의 필사술을 당시 사람들이 전망했던 것보다 빠르게 대체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한 필사문화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15-16세기에 필사본은 정보문화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그리고 필사본은 18세기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흥미로운 책이 바로, 요한네스 트리테미우스 Johannes Trithemius (1462-1516)의  필사생 예찬 De laude scriptorum manualium (1492년)이다.

근대 유럽의 인쇄 미디어 혁명의 저자,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은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요한네스 트리테미우스 Johannes Trithemius (1462-1516)의  필사생 예찬 De laude scriptorum manualium (1492년)은 초기 인쇄술에 관한 책들 중에서 희귀한 책에 속하고, 이 책에서 스폰하임의 수도원장 트리테미우스는 휘하 수도사들에게 인쇄술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필사본이 중요한 이유와 왜 수도사는 인쇄술을 발명에도 불구하고 필사본 제작을 그만두워서는 안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러가지 이유들을 제시했다. 가령, 한가한 손을 일하게 할 수 있다느니, 근면과 헌신 그리고 성서의 지식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양피지에 씌여진 글이 1000년이나 보존되는데 반해, 종이에 인쇄된 글은 수명이 더 짧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필경사들이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특별한 인쇄에는 가죽을 이용하든 경우도 있었다는 점을 그는 언급하지 않았다. 역시나 기독교도 학자답게, 수도원장은 오래보존되는 양피지와 곧 낡아버리는 파피루스를 대비한 옛날 문헌들을 잘 숙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수도사에게 적합한 필사라는 작업이 계속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종이 사용 증가에 대해서 정말로 걱정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의 실제 행적을 보면, 저술가인 그는 필사보다 인쇄를 선호했다. 필사생 예찬도 다른 그의 저작과 마찬가지로 곧 인쇄되었다. 사실, 그는 마인츠의 어느 인쇄소를 너무 자주 이용한 나머지, "그곳을 스폰하임 수도원 출판부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역사상 주요 미디어 교체기에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공포를 매개로 한 견제가 제기되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인쇄문화에서 디지털 문화로의 이행기라고 한다면,

디지털 문화에 대한 공포,견제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논리적 수순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만프레드 슈피처의 디지털 치매-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은 바로 이같은 지성적 맥락에서 이해 가능한 책이라 본다.


하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기원전 5세기 그리스와 16세기 유럽의 역사적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덧글

  • 액시움 2013/08/22 13:41 # 답글

    뭔가 총을 쓰는 건 사무라이를 비겁하게 만들고

    칼로 닥돌해야 진정한 사무라이 스피릿이 발휘된다는 일본제국군이 떠오르는군요...
  • 파리13구 2013/08/22 13:43 #

    중세 프랑스 기사들도 기사도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조총의 사용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ㅠㅠ
  • 액시움 2013/08/29 14:50 #

    영상매체에서 묘사하듯이 솔직히 총보다는 칼이 간지니까... ㅠㅠ

    그 놈의 간지가 뭐라고.. ㅠㅠ
  • 천하귀남 2013/08/23 09:20 # 답글

    현대의 기술 관련 서적들을 보면 기본이 1000페이지 넘는 것이 수북해서 기억에 의존하기가 힘든데 이걸 디지털로 변환하면 검색이 가능해지니 또 다른 신세계가 열리지요.

    문자 > 인쇄본 > 전자텍스트로 매체가 바뀔 때 마다 기존 매체의 찬양이 넘치지만 과거 매체의 불편함이 극복된 부분도 고려해야 할듯합니다.
  • 역사관심 2013/08/23 10:26 #

    동감합니다. 완전한 신세계죠.
  • 라모나 2013/08/24 06:59 # 삭제 답글

    도대체 언제나 과거 매체에 대한 향수,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저항과 같은 chliché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매여 있어야 합니까?ㅠ 새로열리는 놓라운 신세계...쯧쯧...
    두자릿 수 맴돌기식 비교를 허구헌날 반복하는 포스팅이 디지탈 치매와 무관하다보나요? 베데 카툰이쉬... 그로우, 그로ㅜ...

    Think,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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