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 만으로 혁명이 가능한가?" Le monde

[아랍의봄]
[월가 시위]
[혁명]
[전위][자발성]

아랍의 봄과 미국의 월가 시위 관련 보도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이 주목된다. 운동의 자발성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령, 한겨레신문의 2011년 10월 16일자, 국경넘은 자발성·공감…“변화는 이미 시작”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월가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자 없는,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다. 이는 ‘인터넷 광장’ 문화가 빚어낸 결과로 보인다. 리버티 플라자 시위대의 실무그룹 일원인 블랙 페더(19·대학생)는 “시위대 안에 리더십과 계급 서열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며 “이것이 의사결정을 느리게 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한다. 전세계로 급속도로 확산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을 매개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지도자와 대중의 관계는 변화하기 마련이고, 대중의 자발성을 통해 체제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처럼 보인다. 바로 이 점이 최근의 인터넷 기반 대중운동과 과거 20세기식 혁명운동의 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월가 시위는 실패했고, 최근 아랍의 봄도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결과를 지켜보자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시민의 자발성만으로 독재를 타도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타도 이후의 새로운 사회건설을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결국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서 ,혁명에는 지도자와 전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로베스피에르 없는 프랑스혁명, 레닌 없는 러시아혁명, 바츨라프 하벨 없는 벨벳혁명, 레흐 바웬사 없는 연대노조운동, 넬슨 만델라 없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화해, 모택동 없는 중국혁명을 상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도, 지도자와 조직없는 혁명은 여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덧글

  • 에이브군 2013/08/02 23:02 # 답글

    혁명이 본질이란 것이 결국 비주류의 엘리트가 대중을 동원해서 자신들을 주류로 바꾸는 과정일 뿐이란 점에서 SNS는 좋은 도구가 될지 몰라도 그것이 문자그대로 "혁명적인 네트워크의 수단"쪽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3/08/03 00:11 #

    네, 동감입니다.
  • 라모나 2013/08/03 05:09 # 삭제 답글

    매우 성공한 축에 드는 프랑스 68혁명의 다니엘 콩방디가 빠졌네요. 그는 권위적이지도 않은 지도자고요. 꼭 한명이 아니라 민주적인 지도부정도는 필요하겠지요. 아래의 아젠다를 제대로 수렴해서 방향설정과 전망을 제시할만한 본부라할까요. 이런 블로그
    논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직접 물리적 장을 공유해야만 힘이 추진되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이버상의 투쟁은 동시에 불가피한 거겠지요.

    이집트의 카이로의 타히르 광장의 운동을 보도하는 외신들이 카메라를 설치하도록 자발적으로 아파트를 내놓은 사람이 있었어요. 질 케펠에 의하면 그 카메라가 타히르 광장에만 그 높은 아파트에서 조준해서 보여주는 것만 사이버상에서 퍼져나갔기 떄문에 그 카메라를 벗어난 곳에서 크게 움직이고 있던 모슬렘 형제단의 움직임을 보여줄 수 없었고 그런 결과 그들의 존재를 놓쳐서 혁명의 열매가 그들에게 돌아가게 되기도 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간적인 움직임들과 그 움직임들을 어떻게 물리적으로
    만들고 그 움직임들이 어떤 매체로 어떻게 전달되는가등등이 앞으로의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이 생각해봐야 할 수 있어야할 것 같아요. 또 다른 예로 가슴을 보여주는 급진적인 여성운동인 페멘운동의 상대적 성공등도 생각해 볼 수 있겠고요. 페멘운동은 주도하는 유크레인여성들이 시작했지만 이젠 빠리를 중심으로 독일, 프항스 여성들이 함께 주도하는 것 같고 그들이 튀니지에서 시위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것에 주목해 볼 수도 있겠고요. 새로운 형식의 운동을 생각해야해요. 지도자형 에 대한 다중적 운동이란 이분법적 발상 자체가 이미 지나시절적 사고일지 모르는거지요.
  • 에이브군 2013/08/03 08:57 #

    문제는 "혁명을 어떻게 일으킬 것 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 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자면 대다수에 '네임드'라고 볼만한 혁명의 끝은 결국 지도 엘리트가 혁명이전보다 억압적인 (혁명쪽 표현을 빌리자면 반동,수구적인) 태도에 지배당하는 것이였고 그걸 되돌리는데 어마 어마한 희생과 시간이 낭비된걸 생각해봐야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역사나 대중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급진적인 운동은 본질적으로 실패하기 쉬운 구조고 그나마도 잘 조직화되지 못한 운동이라면 사회에 상흔만 남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라모나 2013/08/03 09:58 # 삭제 답글

    사회혁신 운동, 사회변화운동등을 의미한다고 보면 여기 논의에 촛점이 맞는 것 같아요. 공산주의혁명 같은 것만 염두에 둔다면 에이브군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겠고요.
    프랑스의 68혁명은 프랑스 사회의 큰 변혁을 성취했다는 의미에서 혁명이란 이름이
    붙는 거겠지만요. 모든 사회변화운동의 목적은 정의롭고 사회성원인 시민들이 개인의 배경을 막론하고 존중받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체제와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 아닌가요? 흔한 말로 권위주의적인 지배계급을 끌어내리는 것도 있고 의회로 하여금 변혁적인 민주적인 법안을 마련하고 통과시키게 하는 것을 의미할테고요. 역사적으로 보기엔 혁명을 한 곳은 혁명을 하지 못한 곳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봐요. 어떤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역사적 시각의 차이가 역사가의 입지를 보여주겠지만요.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폭풍 변화를 여기에서 다 말할 수 없고요, 68혁명이 갖고 온 프랑스 사회의 어마어마한 변화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혁신적인 종교운동들도 물론이고요. 힘든 변혁적 운동이 없이는 사회가 스스로 개혁적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는게 고민인거죠. 노르웨이나 스웨덴, 덴마크 정도를 혁명없이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사회라 볼 수 있겠지만 그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특수성이 있을 겁니다. 혁명을 엘리트에게 뺏기기만 한 헛된 수고고 상처만 낳게 되리란 시각은 경험적으로 그렇게 벌어진 곳들도 있겠지만 미완의 혁명상태라고 볼 수 도 있겠죠. 끝없는 사회변혁이 이루어져나가야 하는거죠. 푸코를 더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는 전선은 모든데 걸쳐있는거고 투쟁은 이미 곳곳에 있는 거라 보지요. 그것을 몇몇 가시적인 사건으로만 보게되면 사회변혁은 위에서 보듯이 늘 낭비라고만 느껴질테고 사회들은 퇴행의 과정에 놓여질테고 사회 구성원들의 사는 맛은 처음부터 떨어져있을 겁니다. 아닌가요? 조금 더 나아간다면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적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검토도 도움이 될 수 있고요. 개인적인 삶의 널려진 전선에서 투쟁하지 않으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냉소주의와 의식하지도 못하고 빠져드는 허무주의일 수도 있고요. 무력함과 불가능함, 그리고 무지 기타등등의상황인데 다른 것은 몰라도 개인의 노력으로 무지는 탈출해보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무참히 실패한 빠리 코뮨과 같은 것을 역사적 실패라 볼 수 있냐는 겁니다. 그들이 내건 혁신 법안의 제안들 없이 유럼의 다른 나라들이 파시즘으로 도는 와중에 프랑스에서 프론트 파퓰레어, 인민전선당이 36년에 집권해서 혁신적인 사회로 프랑스 사회를 변화시킨데에 파리 코뮨의 역사적 경험등이 큰 바탕이 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열심히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지요. 여성운동, 노동운동등 운동가들의 의식화 투쟁과 민주적인 노조의 투쟁없이 어떻게 힘없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댓가가 돌아가겠습니까? 제가 아니라 역사가 무수한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랍의 봄이 불행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로 혁명의 불필요성으로 점프를 하는대신 왜 변화의 욕구가 어떤 루트로 막히고 제한되고 있는지 그 역사적인 특수성을 이해해 보는게 더 시급한 거일게고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8/03 20:33 # 답글

    혁명이 일어날 필요는 없죠.

    윗분의 이야기 처럼 세상은 원래 자연스럽게 변하는것이니까요.
  • 라모나 2013/08/04 06:12 # 삭제 답글

    이곳의 주인장은 블록의 댓글들을 읽으면서 십년 간 회의하지 않고 꾸준히 뭔가를
    믿고 살롱의 가능성을 토론해왔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먼저 한글을 읽고 의미를
    깨치는 훈련이 되어야 대화의 장이 가능한 바탕이 이루어질텐데 한글이 안되어있는
    젊은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깜놀이에요.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한글, 바로 우리가 쓰는 언어의 수단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요. 한글이 안되는데 어느 외국어가 되겠습니까? 꼴통으로 살다가 꼴통으로가는 길과 한글을 재대로 깨쳐서 삶을 진지하게 탐색해서 제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길을 놓고 젊은 사람들은 선택해야 할 듯 싶습니다. 왜 교수들의 강아지 밥주고 있는지 알고도 남을 듯 싶고요. 교수 강아지 밥주거나 부인의 여행티켓을 북킹하는 일들은 사회에 비추어 자신을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비하면 훨신 고급스러운 삶으로 보일지도 모르고요. 통탄하기보다는 이들 영혼과 삶에 머리가 깨어지는 은총을 은총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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