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소련군의 만행과 독일여성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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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프랑스에서의 미군의 성범죄...
지금까지 종전 직후 동유럽에서 소련군이 자행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잘 알려졌다. 하지만 매리 루이즈 로버츠의 미군들이 한 짓거리 :제2차세계대전 프랑스에서의 미군과 성 What Soldiers Do: Sex and the American GI in World War II France에 따르면, 해방된 프랑스에서의 미군의 성범죄 역시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마존 서점의 책소개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치명적인 독일군의 기관총 사격이 빗발치는 지뢰가 널린 해변에 상륙한 병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군 병사들의 전우와의 우애, 애국심, 나치 독재와 대량 학살을 끝장내고자 하는 의지가 감동적인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1944년 프랑스 주둔 미군이었다면, 당신은 다른 것에도 끌렸을 것이다. 당신은 철조망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프랑스 여성의 유혹에 끌리게 되고,그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방군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기중이었다는 환상에 젖어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설명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위대한 세대"에 대한 상식과는 다르다. 하지만 역사가 매리 루이즈 로버츠는 그녀의 저서, 미군들이 한 짓거리에서 기존의 통념에 도전했다. 매우 다양한 사료들, 뉴스, 선전물, 훈련 교본, 공식 작전 문서, 전시 일기, 회고록 등을 분석한 로버츠는 미군 지도부가 일련의 성적 환상들을 체계적으로 유포시켰음을 입증했다. 그것은 프랑스 여성들이 성적으로 능숙하고, 유용하다는 성적 환상이었다. 그 결과는 혼란이었다. 여기에는 창녀와의 공식적인 성관계에서 폭력적인 강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따라서 성병이 기승을 부렸다. 이것이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사기가 저하된 프랑스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이같은 성적 약탈관계와 성에 대한 미군 지휘부의 미지근한 대응이 불미 양국 관계를 심각하게 악화시켰고, 그 결과 프랑스의 해방된 영토에 대한 장기적인 통제와 프랑스 주권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로버츠의 책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한 미군의 업적과 용맹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미군들이 한 짓거리는 역사가 가장 정직할때, 역사가 항상 더 유용하고, 보다 흥미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솔직한 역사는 여전히 위력을 가지는 반질반질해서 아름다운 향수와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진짜 실수를 넘어서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관련 서평은 다음과 같다.
디데이에 노르망디에 상륙한 미군들은 해방자로 환영을 받았지만, 미군이 1945년말에 귀국할 즈음이 되면 많은 프랑스 시민들이 그들을 매우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항구 도시 르 아브르의 시장은 미군의 주취폭력,자동차 사고, 성폭행을 비난하는 성난 시민들의 민원편지로 곤욕을 치렀다. 그 편지들은 "군복을 입은 도적들이 자행한 테러 체제" 같은 수사를 동원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대중적 역사에서 묘사되었던 유럽을 나치의 폭력에서 구원한 미국의 "위대한 세대"의 그것과 다르다. <미군들이 한 짓거리 :제2차세계대전 프랑스에서의 미군과 성>에서 역사가 로버츠는 도발적인 주장을 개진했다 : 병사들에게 프랑스 해방은 자유를 위한 전투가 아니라 성욕이 넘치는 프랑스여성들과의 애로틱한 모험으로 인식되었고, 이것이 남성 성욕의 쓰나미를 발생시켰고, 이 쓰나미가 전쟁으로 이미 상처를 입었던 프랑스 국민들에게 제2의 충격으로 다가왔고, 프랑스의 주권과 존엄에 상처를 주었다는 것이다.
위신콘신 대학의 프랑스사 교수인 로버츠는 프랑스 르 아브르의 문서보관서에서 시민들의 고발장을 처음 발견했을때의 흥분을 회상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는 카메라로 그 문서들을 찍기 시작했다. 8시간 동안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다."
로버츠는 부모님이 1944년에 만났고, 당시 아버지는 해군 장교로 훈련 중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미군 병사들의 영웅주의와 희생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프랑스쪽 사료를 보면 피해방자들의 관점에서의 중요한 논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성에 대한 미군과 프랑스 장교간의 분쟁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미군 해방자들은 확실히 성에 관심이 있었다. 당시 라이프지 같은 미군측 자료는 프랑스를 "4천만명의 쾌락주의자들이 거주하는 거대한 매음굴"로 묘사했다. 그리고 미군의 성조기지에 실린 프랑스어 문장 소개에는 "너는 진짜 예쁘다" "집에 부모님 계시니?"같은 노골적인 표현들이 있었다.
미군들의 성적인 방종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창녀촌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가령 1945년 8월 르 아브르 시장은 미군 사령관에게 밤낮으로 거리에서 자행되는 추태를 안보이게 하기 위해서 도시 외곽에 매음굴을 설치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미군 당국은 이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매춘의 용인이 미국에 있는 병사들의 어머니와 애인들에게 안좋은 인상을 줄수도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로버츠가 제2차세계대전의 성의 역사를 투명하게 규명한 첫번째 역사가가 아니다. 이미 1990년대에 역사가들은 동부전선에서의 소련군의 집단 강간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진행했다. 동시에 성의 역사가들은 미군 병사들의 친교에 대해 주목했고, 특히 병사들이 유혹해 올때의 여성들의 생각에 주목했다. 당시의 공식적인 관점은 소련군들은 강간범, 미군은 유혹자 그리고 영국군은 신사들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 풍토에서 미군 병사들의 성범죄에 대한 연구, 비록 그것이 소규모였다고 주장했다고 해도 논쟁 대상이었다. 가령 로버트 릴리의 "힘으로 빼았기"같은 책은 당시의 군사 재판 기록을 토대로 미군이 프랑스,독일,영국 여성에게 자행했던 강간 사건들을 연구한 것으로, 프랑스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당시 흑인 병사들이 특이하게 높은 비율로 처벌받았음을 강조하고 있는 관계로 미국에서 출판되기 어려웠다.
미군 강간 사건을 연구했던 몇몇 학자들은 흑인병사들의 처벌이 많았던 것은 당시 미군이 인종차별적 군대였고, 강간 사건에 대해서 인종적 차별적인 처벌을 내렸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당시 미군은 강간을 전투 지원 업무만을 담당했던 매우 소수의 흑인 병사들만의 문제로 규정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는 것이다.
윌리엄 히치콕에 따르면, 당시 백인 병사들은 전투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군은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백인 하사를 처벌하는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로버츠는 프랑스 북부에서의 15건의 군사법원 재판 기록을 통해, 당시 미군에서 인종차별이 확실히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그녀의 분석은 프랑스인도 당황하게 만든다. 몇몇 고발 편지들은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들에 의한 점령의 굴욕을 그리고 있다. 1945년 4월의 한 프랑스인의 편지에는 "우리는 이곳에 더이상 병사들이 없고, 단지 소수의 검둥이들이 있고, 바로 이들이 이웃을 위협한다."라고 적혀있다.
로버츠는 자신의 책이 노르망디의 이야기를 흠집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나는 미군들이 그곳에서 한 것이 엄청난 것이었음을 믿는다. 다만, 나는 더 풍부하고, 보다 현실적인 그림을 제공하는데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덧글
저런 민원에 시달렸을까요?
최근에 발간된 거라면 놀라운 일인데요.
군대와 성범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프랑스 진군 미군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일본군이 위안부를 두고 민간인 피해를 줄이는 차선책이었다고 주장할까요.
군대가 있는곳에는 강간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당연히 높습니다. 하지만 이 책임을 군인단위로 물릴지 군대전체 단위로 물릴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역시 할리우드의 제2차 세계대전 소재 영화는 자국군대 찬양용, 즉 <배달의 기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네요. -ㅅ-
하긴 소련이 만든 <유럽의 해방>에서도 소련군 병사들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던 유대인들을 구해주는 얘기는 나와도(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전차 중대에서 쓸 연료탱크를 확보하는 것도 나왔지만), 그들이 수용소의 유대인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예전에 제가 <뉴스위크>에서 본 주장을 반영하지는 않았으니...
톰 크루즈와 니콜 누님이 아일랜드 이민자들로 나왔던 <Far, Far away>에서도 "아일랜드인은 고용 안 함"이라고 써붙인 저택도 나왔고... 그러고 보니 제가 세종서적에 있을 때 작업한 <우리 생애 최고의 쇼>의 저자 겸 화자 겸 주인공도 아일랜드계인데, 그가 모시고 여행 떠난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저자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일랜드계라서 1920년대 미국 땅에 정착할 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셨죠. 할아버님의 경우 "할 일이라곤 삽을 쥐는 것뿐이었다"고 하셨다는... -ㅅ-
그런데 남유럽계 또한 흑인이나 마찬가지 대접을 받았다는 얘기도 구학서 교수가 정리한 세계사 책에 나온 기억이...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