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을 위한 18세기 정치인의 덕목은?" Le monde

[자료]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차이점...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에 따르면, 감각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20세기 역사를 회고해 보면, 지난 세기는 청각이라는 재-구술성 re-oralization in the twentieth century 이 강화된 시대였다. 월터 옹이 제2차 구술성 Secondary orality 이라 개념화했던,  이같은 재구술성은 라디오,텔레비전 등의 청각을 이용한 매체의 발전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이같은 재구술성 강화가 정치와 그 선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재구술성 강화 이전의 시각 중심의 인쇄술 시대와의 차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중을 효율적으로 선동하기 위해서 인쇄술의 시대와 재구술성의 시대는 어떤 다른 정치가의 덕목이 필요했을까? 가령, 인쇄술 이전에, 민중적 지지를 받고자 원했던 웅변화와 설교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강력한 허파였다. 

하지만 인쇄술의 등장과 함께, 다소 역설적인 인물들이 등장했다 : 고요한 선동 혹은 침묵하는 웅변가. 이같은 침묵하는 웅변가는 1789년 프랑스 제헌 의회의 한 영향력있는 의원에게서 확인되었다. 의원은 혁명 전야에 인민의 보초병이라 불리던 급진적인 잡지를 발행했는데, 그는 연설을 해야 했을때 마치 여성 처럼 속삭이는 방법으로 연설했다고 한다. 이렇게 18세기 유럽 정치 무대의 주요 정치인들 중 다수가 전통적인 연설 기술에 능하지 못했다고 한다. 1760년대 영국의 존 윌크스는 대중적 연설에 무관심했고, 그가 임시변통으로 대답해야 했을때는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톰 페인은 식민지 당국을 긴장시킬 만한 어떤 기억될만한 연설도 한적이 없다. 페인의 친구인 브리소는 시끄러운 목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중 연설을 싫어했고, 훈련받지 못한 웅변가였고, 대중 앞에서 수줍어했다. 카미유 데믈랭은 연설할때 말을 더듬었다. 

이렇게 인쇄술이 지배적인 18세기 유럽에서 이들 정치인에게 공공 문제에서 은유적인 목소리를 낼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오직 펜의 힘이었던 것이다.    

선동을 위해 필요한 감각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존 윌크스,톰 페인,카미유 데믈랭은 청각에 의존하지 않는 펜의 힘으로 대중을 설득했다면, 재구술성이 강화된 20세기의 히틀러,무솔리니,루스벨트 등은 대중 선동을 위해 라디오라는 청각 장치 이용에 능해야만 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