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필사문화가 인쇄술에 대응한 방법은?" Le monde

[자료]블로그와 홈페이지의 차이점...

[책의 역사]
[인쇄술]
[인쇄혁명][구텐베르크 혁명]
[필사문화]


수도원 필사문화가 인쇄술에 대응한 방법은?


15세기말 독일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으로 출판문화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인쇄술의 발명과 더불어, 이전까지 책의 생산의 중심이었던 수도원 필사문화 scribal culture / Manuscript culture 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인쇄술 때문에 필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이 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책 “The Book In the Renaissance”의 저자 앤드류 패티그리 Andrew Pettegree 의 지적에 따르면, 인쇄술은 과거의 필사술을 당시 사람들이 전망했던 것보다 빠르게 대체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한 필사문화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15-16세기에 필사본은 정보문화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그리고 필사본은 18세기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흥미로운 책이 바로, 요한네스 트리테미우스 Johannes Trithemius (1462-1516)의  필사생 예찬 De laude scriptorum manualium (1492년)이다.


근대 유럽의 인쇄 미디어 혁명의 저자,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은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요한네스 트리테미우스 Johannes Trithemius (1462-1516)의  필사생 예찬 De laude scriptorum manualium (1492년)은 초기 인쇄술에 관한 책들 중에서 희귀한 책에 속하고, 이 책에서 스폰하임의 수도원장 트리테미우스는 휘하 수도사들에게 인쇄술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필사본이 중요한 이유와 왜 수도사는 인쇄술을 발명에도 불구하고 필사본 제작을 그만두워서는 안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러가지 이유들을 제시했다. 가령, 한가한 손을 일하게 할 수 있다느니, 근면과 헌신 그리고 성서의 지식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양피지에 씌여진 글이 1000년이나 보존되는데 반해, 종이에 인쇄된 글은 수명이 더 짧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필경사들이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특별한 인쇄에는 가죽을 이용하든 경우도 있었다는 점을 그는 언급하지 않았다. 역시나 기독교도 학자답게, 수도원장은 오래보존되는 양피지와 곧 낡아버리는 파피루스를 대비한 옛날 문헌들을 잘 숙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수도사에게 적합한 필사라는 작업이 계속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종이 사용 증가에 대해서 정말로 걱정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의 실제 행적을 보면, 저술가인 그는 필사보다 인쇄를 선호했다. 필사생 예찬도 다른 그의 저작과 마찬가지로 곧 인쇄되었다. 사실, 그는 마인츠의 어느 인쇄소를 너무 자주 이용한 나머지, "그곳을 스폰하임 수도원 출판부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고 한다.




덧글

  • DonaDona 2013/05/10 20:37 # 답글

    편한 게 좋은겨....인가.
  • 천하귀남 2013/05/11 12:16 # 답글

    인쇄술이 보급되고 수십년만에 책쓰는걸로 벌어먹는 전업문필가가 나왔고 상속권에 저작물수입이 포함됬으니 인쇄분야의 경제적 이익이 작지 않았을듯 한데 반면 필사쪽의 수입이 얼마였을지가 궁금해 지는군요.
  • 파리13구 2013/05/11 12:25 #

    나중에 관련 자료를 알게되면, 공개하겠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