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에서의 대중의 탄생... Le monde

"독일인들이 지식 공유를 싫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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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럽에서의 대중의 탄생 :사람,사물,지식의 형식

Making Publics in Early Modern Europe: People, Things, Forms of Knowledge


이 책을 편집한 브론웰 윌슨과 야치닌은 인쇄기,극장 무대, 예술, 음악 출판물, 설교 출판물, 지도, 시장 등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가족이나 사회 계급,일터와는 무관한 관심사와 생각들을 중심으로 결속될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결속과정에서 근대의 대중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아마존 서점의 책소개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어떻게 사람,사물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지식이 근대 초기 유럽의 대중을 탄생시켰고, 어떻게 대중이 초기 근대 사회의 모습을 변화시켰는지 구명했다.


이 책의 관심의 초점은 대중의 형성 "making publics" 이다. 새로운 형태의 결사,모임,동아리의 탄생이 가족,신분,직업에 기반하지 않은 사람들을 연결시킬수 있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서 관심,취향,지향,희망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집단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형식의 모임을 탄생되면서, 문화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은 누가 공적인 인간 a public person 이 될수 있는지에 대한 기존 생각에 도전하게 되었고,당시의 일반인들 위해서 공적 생활 public life 의 자산을 엄청나게 증가시켰고, 근대의 정치 문화를 탄생시키는데 밑거름이 된 사상과 관습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전공의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문학,문화연구,예술사,종교사,과학사,음악학자들이 참여했고, 연구자들은 근대 초기 대중의 탄생의 영역을 분석하면서, 이 시기의 예술,지식 출판물의 풍부한 창의성과 발전상태에 있던 사회적 힘을 입증했다.


가령, 리처드2세 연극을 보기위해서 영국 글로브 극장에 모인 3000명의 사람들은 통치자가 무능할 경우,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야닌은 바로 이 경험을 통해서,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서로 만나거나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어떤 생각이 이들을 대중으로 연결시켰다. 처음에는 이런 모임이 지배층에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고 야치닌이 설명한다.


"실권자들은 아무도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권력을 향해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어울려 빈둥거리는 무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이런 집단이 유지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꾸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이글루스 역밸에서, 학연,지연,연령,직업을 불문한 블로그들이 특정한 역사문제에 대해서 뜨겁게 토론하는 것의 역사적 유래는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아마도 대중이 탄생 중이던 영국의 글로브 극장이 우리가 사회적 뿌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각자 사생활로 바쁜 사람들이 사이버공간의 공적 무대에서 시간을 쪼개서 관심있는 역사적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 특히 역사학 전공 여부와 무관한 일반 시민도 논쟁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역밸의 장점을 고려한다면, 이같은 우리의 공적 역사연구 활동이 어떤 생산적인 성과로 연결될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렇게 가상공간에서 대중들이 자신들만의 역사에 대한 해석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가운데, 이른바 전문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 대한 논의에 별반 관심이 없고, 대학내부에서 그리고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학회활동만에 매진한다는 것은 역사학의 대중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역사학 박사 중에 간혹 블로그 활동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만, 무시해도 좋은 정도이고, 어떤 박사의 경우는 사람들의 공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현실에 유감일 뿐이다.


이글루스 역밸을 보면, 물론 그 논의 수준에 한계가 있지만, 시민적 상식에 기반한 역사 인식이 블로그 공간에서 탄생 중이고, 전문적 역사학은 이 사이버 역사대중 탄생에서 부차적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물고기가 물에서 놀듯이 혁명가는 대중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단지 모택동만의 상식이 아니다. 대중적인 역사인식에 책임감을 느끼는 역사학자라면 대중적인 역사 공론의 장에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할 것이다.




덧글

  • 솔까역사 2013/04/17 18:34 # 답글

    역사학계는 순수하지 않습니다.
    교수와 그 제자 사이에 이권과 지지의 거래가 이루어 지고 있다고 봅니다.
    반면 역사애호가는 순수합니다.
    오직 진실을 추구하죠.
    물론 역사를 만들어 내고 싶은 소박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 솔까역사 2013/04/17 18:39 # 답글

    역사학계가 대중과 가까워지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학계의 불순함이 대중의 순수함으로 씻겨질 수 있고
    대중의 눈치를 보느라 학계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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