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존 다우어와의 대담...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역사가 존 다우어 씨 “냉전이 가로막은 영토문제의 해결”


일본 도쿄 - 아사히신문 보도
2012년 10월 31일


존 다우어

미국 역사가
패배를 껴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의 저자


동아시아의 영토문제는 왜 2차대전 종전 후 70년 가까이 되도록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일본의 전쟁책임은 왜 이렇게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것일까. 40년 이상에 걸쳐 일본의 전후를 주목해 온 존 다우어 씨는 ‘샌프란시스코∙시스템’과 ‘역사와 기억’이라는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는 두 단어를 제시했다.

 

-영토문제, 그리고 전쟁책임. 동아시아에서는 몇 번이고 등장하는 문제가 도무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과 한국, 중국과의 역사 인식과 영토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마치 두더지 게임과 같다. 하지만 독일은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했고 일본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받은 일본의 사죄 일람에 대한 상세한 리스트를 갖고 있다.”

 

“그럼 어째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냉전기에 있다. 즉, 대부분의 커다란 문제의 근원은 냉전 초기, 특히 1951년에 맺어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구 일∙미안보조약에서 시작된다. 동아시아의 영토문제는 북방영토(쿠릴열도), 다케시마(독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釣魚島), 대만, 남중국해 제도의 5개로 이는 모두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검토되는 도중에 냉전으로 인해 해결되지 못했다.”

 

“이 평화조약에 의해 미국과 일본은 우호적 관계가 됐고 전후 일본의 번영이 시작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받은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이다. 그럼에도 한국과 중국은 강화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일본이 관계의 재구축을 정말로 필요로 한 나라와의 정상화는 몇 년이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극이다. 구서독과 달리 이 기간에 전쟁 상대국과의 대화는 없었고, 역사인식의 차이도 선명해졌다.”

 

“평화조약을 계기로 일본은 미국에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샌프란시스코∙시스템’에 포함돼 아시아에서 분리됐다. 그래도 당시, 예를 들면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전쟁 중의 행위에 대해 사죄하는 것은 가능했다고 본다. 적어도 미국이 요구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한국과 중국과의 화해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6∙25전쟁이 이미 시작됐고 미국에 있어 일본은 ‘아군’, 중국은 ‘평화에 맞서는 적’이라는 구조로 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6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 중의 일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게 됐다. 한국과 중국이 받은 피해에 대해서도 발언하지 않게 됐다. 위안부문제와 731부대는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도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도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신중히 생각할 기회가 없었고 미해결 과제가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와서 영토문제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다케시마의 경우 미국은 의도적으로 평화조약에서 영유권을 애매한 상태로 남겨뒀다. 과거를 거슬러 찾아보면 이는 꽤 복잡한 문제고, 일본이 주장하는 ‘명확히 고유의 영토’라고 할 만큼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국내정치도 큰 요인으로 얽혀있다. 한국은 내셔널리즘을 배경으로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선택을 했는데, 몇 년이나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한국, 두 나라의 국내에서 굳이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했다고도 할 수 있다.”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도 중국은 강화회의 당시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미국은 무시했다. 현재 중국은 국내에 여러 문제와 모순을 안고 있어 국민의 분노와 불만의 창끝이 일본을 향하게 하려고 영토문제를 이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센카쿠에 대한 주장은 황당무계하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굳이 중국을 자극한 세력이 일본에도 있다.”

 

“다만 두 문제 모두 1951년에 해결됐어야만 하는 문제였다. 아무런 변화 없이 60년이 지난 게 이상하다. 북방영토에 대해서도 1950년대에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전 외무성이 구소련과 교섭해 2개 섬 반환에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소련과 합의하면 오키나와 반환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위협해 기회를 잃었다. 종속적인 대미관계 탓에 일본이 전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예가 여기에도 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미국의 의도가 얽혀 있다는 말인가.

 

“미국의 정책에 일본이 말려든 예는 물론이며 그것은 한국, 중국과의 관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를 비롯해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는 안보조약에 근거해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일본의 안전보장뿐만 아니라 미군 전방전개의 거점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6∙25전쟁, 베트남과 캄보디아 폭격, 최근에도 이라크 전쟁 등에서 활용됐다. 이 전쟁들은 정의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데도 일본은 항상 미국을 따르고 의견을 말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세계에서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에도 일본은 말려들게 될 것이다.”

 

“역사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시스템에 그 기원이 있다. 일본은 번영의 대가로 자주적으로 행동할 수 없게 됐고 그대로 지금에 이르러 타개책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 상태다. ”

 

-그렇다면 많은 일본인이 중국과 한국의 극심한 분노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왜 인가.

 

“나는 현대사 연구가로서 전쟁과 평화 문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다. 그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져온 것은 ‘역사’와 ‘기억’의 관계다.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현재의 인간이 이용하며 많은 경우 오용한다. 그러므로 기억과 역사의 관계는 오늘날 세계정세에도 영향을 미치며 자주 논쟁을 일으킨다. 현재의 일∙한, 일∙중 관계에서는 그것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반일 시위가 가장 심각해진 것은 류타오후(柳條湖) 사건이 일어난 9월 18일이다. 일본에서는 기억되지 않는 날이지만 중국에 있어서는 상징적인 날이다. 피해를 당한 중국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는 일본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와는 다르다. 한국의 경우는 식민지 지배를 받고 이름과 말까지 바뀌었던 일이 강조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국가가 피해자 의식을 거론할 때,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 의한 공격에 집중된다. 현대 중국 사회는 군벌 하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공산당 정권이 된 후에도 대약진정책과 문화대혁명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피해자 의식은 그쪽으로는 향하지 않는다. 한편 일본도 전쟁 중에는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의 원자폭탄, 최근에는 북한에 의한 납치 사건에 피해자 의식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전쟁 가해자로서의 의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역사 인식 문제는 일본 특유의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세계 어디를 봐도 국가는 역사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6∙25전쟁 연구자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증언에서는 미군 병사들이 극심한 추위 속에서 고통받았던 사실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북한에서는 미국이 엄청난 위력의 공습으로 토지를 초토화한 일이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도 미국에서 거론되는 것은 자국의 고통이다. 워싱턴에 있는 전몰자의 위령비에는 미군 병사 5만800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베트남 사망자는 잊혀져 있다. 심히 우려할 만한 역사의 왜곡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피해자 의식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의 결여가 항상 따라다닌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동정도 아니며 동조도 아니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해의 적이 되는 것은 언제나 내셔널리즘이며 애국심이다. 미국의 외교에서 실패의 상당수는 이해의 결여에서 비롯됐다. 일본에서도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과 중국의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에서 빠져나갈 길은 진정 없는가.

 

“일본의 정치가 미국에서 분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지도 모른다. 연구 생활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도 처음 연구를 시작한 당시와 같은 질문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간에는 우호적인 관계도 많이 형성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K-POP과 한류 드라마가 유행하고 비즈니스 관계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반일 시위로 일본계 점포가 습격을 받은 것에 대해 충격을 받은 중국인도 많다. 이러한 시민 수준에서의 관계가 늘어나면 애국심이나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 된다. 영토 문제를 계기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어느 나라에도 없기 때문이다.”




덧글

  • 초록불 2013/04/14 11:58 # 답글

    이러한 시민 수준에서의 관계가 늘어나면 애국심이나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 된다.

    - 좋은 이야기인데, 이러한 일을 훼방 놓으려는 세력이 너무나 많습니다.
  • 파리13구 2013/04/14 12:07 #

    네, 동감입니다...
  • 초록불 2013/04/14 11:59 # 답글

    그런데 독도를 미국이 "일부러" 애매한 상태에 놓았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 파리13구 2013/04/14 12:10 #

    제 추측입니다만,

    동아시아 3국이 힘을 합치는 것보다는 분열하는 것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나쁘지 않다는 키신저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이 전후 일본의 영토문제를 모호하게 남겨둔 역사적 책임이 있다면,

    이같은 갈등의 씨앗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갈등하게 되고,

    분쟁 당사국들이 미국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것이

    미국이 동아시아 문제에 자동적으로 개입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물론, 의문에 불과하고, 증거는 없습니다. ^^
  • 듀란달 2013/04/14 16:13 #

    중원의 왕조가 북방 세력들의 분열을 조장해 평화를 취하려 했던 방식과 유사하군요.
  • 함월 2013/04/14 19:01 # 답글

    옛말에 틀린말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정말 틀린 말이라고 생각되는게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못 뻗고 잔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때린 놈은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맞은 놈은 억울해서 잠을 못자는게 현실이군요...
  • 파리13구 2013/04/15 10:02 #

    속담과 현실이 유리되는 경우입니다...
  • 갈천 2013/04/15 14:27 # 삭제 답글

    독도의 분쟁 원인은 독도 그 자체가 지리상 위치상으로 볼 때 어느쪽에 귀속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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