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쿠릴 열도 점령에 앞서 긴장한 이유는?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일본항복]
[일소전쟁]
[8월폭풍 작전]

<쿠릴 열도>

스탈린이 쿠릴 열도 점령에 앞서 긴장한 이유는?


쿠릴 열도는 캄차카 반도와 일본 홋카이도 사이, 오호츠크 해와 북태평양을 가르는 위치에 펼쳐져 있으며, 여러 화산섬을 포함한 크고 작은 약 5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얄타협정에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의 대가로 쿠릴을 소련에게 넘긴다고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쿠릴 열도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 참모본부는 최북단의 4개섬을 제외한 모든 쿠릴 열도가 미국의 작전 지역임에 합의했다. 따라서 스탈린은 복잡한 도전에 직면했다 : 그는 미국의 반응에 주시하면서, 가능한 빨리 쿠릴 열도를 점령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그에게는 정교한 외교와 거침없는 군사 행동이 필요했다.


블라디보스톡 시간으로 8월 15일 아침, 즉 모스크바 시간으로 8월 14일 밤, 바실레프스키 소련군 극동군 사령관은 푸르카에프 Purkaev 제2 극동전선군 사령관과 이우마세프 Iumashev 제독에게 지원 병력을 기다리지 말고, 쿠릴 열도 북부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일본은 쿠릴 열도 북부가 홋카이도와 일본 본토 방어에 매우 중요하다고 간주하고 있었다. 반면, 소련 지도부는 이들 섬이 소련에게 태평양으로의 출구를 제공한다고 간주했다. 푸르카에프는 휘하 지휘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일본의 항복이 임박했다. 이같은 유리한 상황을 활용, 시무슈,파라무시르,오네코탄 섬을 점령하라!" Japan's capitulation is expected. Taking advantage of this favorable situation, it is necessary to seize Shimushu, Paramushiru, and Onekotan.


바실레프스키는 스탈린으로부터 쿠릴 열도 작전을 직접 명령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워싱턴은 모스크바 시간 8월 14일 오후 9시에 일본의 포츠담 선언 수용 사실을 알게되었다. 따라서 쿠릴 작전을 실행하라는 스탈린의 명령은 일본의 포츠담 선언 수용으로 인해 자극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만주,조선,남부 사할린에서의 작전은 예상했던 것처럼 진행되었고, 대부분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랐지만, 쿠릴 열도에 대한 작전은 아직 진행 중이지 못했다. 임박한 일본의 항복이 스탈린으로 하여금, 일본의 항복 이전에 쿠릴 열도 점령을 위한 행동에 즉시 돌입해야 한다는 확신을 제공했음이 분명하다. 바실레프스키의 명령, 즉 증원 부대 없이, 작전에 즉시 돌입하라는 것은 소련이 촉박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마음이 급했다.


바실레프스키의 명령을 받은 푸르카에프에게는 단지 소규모의 병력만이 있었다 - 101사단의 2개 연대, 태평양 함대 소속의 2개 해군 보병 중대 그리고 함선 및 각종 부유 장치들. 지역 사령관은 페트로파블로스크에서 이것만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 뿐이다.


캄차카주 사령관인 그네츠코 Gnechko 소장은 점령을 위한 준비 부족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전체 작전을 위한 준비 기간은 이틀에 불과했다. 소련군은 상륙작전을 위해서 충분한 선박도,대포도,무기도 보유하지 못했다. 준비와 장비의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서, 소련군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임박한 항복에 따른 정치적 상황을 활용한 기습이었다.


그네츠코의 계획은 8월 16일 오후 11시 시무슈의 북동 해안에서 기습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것이었고, 8월 17일에 섬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계획은 점령한 시무슈를 기지로 해서, 파라무시르,오네코탄 섬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쿠릴 열도 중부,남부에 대한 그 이상의 작전 계획은 아직 없는 상태였다.  


소련의 쿠릴 열도 침공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알수 없었던 스탈린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는 우선 포츠담 회담에서 소련의 작전지역으로 확실하게 인정받았던 시무슈와 파라무시르 점령을 명령했고, 이곳을 기반으로 향후 추가 작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첫번째 작전 계획에 오네코탄 섬 점령계획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오네코탄은 미국의 작전권에 속하는 곳이었고, 이를 통해 미국의 대응을 지켜볼 작정이었다. 만약 스탈린이 미국의 항의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는 물러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는 쿠릴 열도 중부와 남부로 추가 작전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네츠코와 그의 참모들은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출발하기 전에 복잡한 준비를 마쳐야만 했다. 이 준비를 36시간안에 마쳐야만 했다. 나머지 8월폭풍작전에 신중하게 계획된 것과는 다르게, 이번 작전은 졸속으로 추진되었고, 당연히도 많은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령, 소련군은 상륙작전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제일먼저 선적했고, 이것들은 무거운 짐의 바닥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상륙작전이 시작되었을때, 소련군은 배의 바닥에 있는 무기와 장비를 꺼내기 위해서 그 위의 화물 더미를 치워야만 했다. 이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8월 17일 오전 4시, 계획보다 2시간 늦어, 소련 선단이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출발했다. 선단은 두꺼운 바다 안개 속에서 몰래 그리고 천천히 시무슈를 향해 항해했다. 거리는 170마일이었다. 24시간의 항해 끝에, 소련 선단의 첫번째 함정이 8월 18일 오전 2시에 시무슈에 도착했다. 2시간 후, 나머지 선단의 함정들이 상륙 지점을 향해서 수평으로 대열을 지었다. 이렇게 시무슈 전투 The battle of Shimushu 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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