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남부 사할린 점령 -45년 8월 26일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사할린 분할- 북위 50도를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일본이 분할하고 있었다>

[일본항복]
[일소전쟁]
[8월폭풍 작전]

소련의 남부 사할린 점령

1945년 8월 11일- 8월 26일


일본령 사할린 혹은 가라후토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남부)는 일본군 88사단이 지키고 있었다. 소련의 선전포고 이전에, 사할린 주둔 일본군 사령관은 미국의 침공을 예상했다. 따라서 일본군은 섬의 동쪽 해안에 요새를 구축했다. 하지만 소련이 만주를 침공한 8월 9일 이후, 88사단은 북쪽으로부터의 소련의 침공에 급히 대비해야만 했다.


소련의 수적인 우세를 고려하면, 남부 사할린에서의 소련의 승리는 시간문제였다. 미국은 이미 남부 사할린을 소련에게 넘기는데 동의한 상태였고, 따라서 이 작전 때문에 미국과 충돌할 우려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사할린 작전을 서두른 이유는 그들의 주요 목표가 단지 사할린의 점령이 아니었고, 소련군을 남부 항구인 마오카와 오토마리에 집중시켜야 했고, 이는 홋카이도 북부와 쿠릴열도 남부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8월 10일의 늦은 밤, 만주 공세의 성공을 확신한 소련 극동군 최고사령관 바실레프스키 Aleksandr Vasilevsky는 푸르카에프 Purkaev 제2 극동전선군 사령관 commander of the Second Far Eastern Front 에게 11일 아침에 소련 태평양 함대와 합동으로 56군단을 동원, 남부 사할린을 침공, 8월 22일까지 섬 전체를 점령하라고 지시했다. 11일 오전 9시 35분, 소련군이 국경을 돌파했다. 일본군이 대본영으로부터 공격 행동에 가담하지 말라는 제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참호에서 소련군 침공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8월 15일 정오, 일본군은 일왕의 항복 선언 방송을 청취했다. 대본영은 그날 밤에 공격 행동을 중지할 것을 명령했고, 다음날 오후 자위를 제외하고, 즉각적인 정전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삿포로의 제5방면군 the Fifth Area Army 은 88사단에게 최후의 한사람까지 가라후토를 방어하라고 명령했고, 소련이 오토마리 항에 병력을 집결, 홋카이도 공격을 할 것이다라고 정확하게 예상했다. 따라서 88사단은 2개의 모순된 명령을 받았던 셈이다.


이렇게 일본군 수비대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소련군은 공세를 계속했다. 8월 19일 대본영은 제5방변군에게 모든 전투 행위를 중단하고, 소련군과 협상에 나서라는 명령을 받았다. 8월 20일, 제5방면군은 기존 명령을 취소, 예하 부대에게 소련군과 정전 및 무장해제를 협상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소련군이 수도인 도요하라를 점령한 것은 8월 25일 이었고, 이는 바실레프스키가 명령한 점령 시한을 3일 넘긴 것이었다.


북위 50도를 돌파한 소련군 작전과는 다르게, 마오카와 오토마리 항의 점령은 매우 허술한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 항구 점령 임무는 제2 극동전선군의 113 여단과 태평양 함대의 합동 작전으로 진행되었다. 이 급조된 상륙부대는 마오카 공격을 위해서 8월 18일 밤에 포스토바이아와 바니노를 출발했다.


8월 19일,소련의 첫 부대가 마오카에 상륙하자 마자, 소련군은 홋카이도로의 피난을 위해 항구로 나와있던 비무장 민간인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일본 민간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소련군은 정오에 항구를 손쉽게 점령했고, 도심에 진입,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으로 총격을 가했다. 이에 일본군이 대응 사격을 해서, 양국 군대간에 치열한 교전이 있었다. 하지만 오후 2시, 소련군이 항구를 장악했다. 오후 7시 30분, 일본군 사령관이 정전 협상을 위한 사절단을 보냈지만, 그들은 소련군 지휘본부에 도착하기 전에 총격을 받아서,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마오카를 점령한 이후, 소련군의 다음 목표는 오토마리 항 점령이었다. 자하로프 대령 휘하의 113여단은 철길을 따라 오토마리로 진격했고, 레오노프 대령이 지휘하는 태평양 함대는 8월 24일 오전에 상륙 부대를 동원, 오토마리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레오노프의 상륙부대가 마오카를 떠나자 마자 그들은 8월 23일밤에 사나운 폭풍을 만났고, 소야 해협으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섬의 서부 해변인 혼토에 상륙할 수 밖에 없었다. 8월 24일, 폭풍이 잠잠해진 후에야, 레오노프의 부대가 오토마리로 항해할 수 있었다. 8월 25일, 소련군이 육상과 해상으로부터 오토마리를 공격, 이를 점령했다. 같은 시각, 소련군 56군단이 남부 사할린의 수도 도요하라를 점령했다. 8월 26일, 일본의 제5방면군이 사할린 주둔 일본군에게 항복을 명령했다. 이렇게 사할린 작전이 종료되었지만, 바실레프스키가 지시한 시한으로부터 4일이 지난 후였다.


미국이 소련이 남부 사할린을 회복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고, 이곳에서의 소련군 작전에 대한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련군은 서둘렀고, 이는 섬의 점령만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오히려 다음 단계의 작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서둘렀던 것이다 : 쿠릴 열도와 홋카이도.   




덧글

  • 솔까역사 2013/04/11 10:44 # 답글

    소련이 얻은 게 있다면 저 사할린이군요.
    일본은 독도가지고 한국을 섭섭하게 할 게 아니라 저 사할린을 되찾을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군요.
    센카쿠도 중국에 줘버리고 중국과 함께 러시아를 압박해서 각기 연해주와 사할린을 되찾는 겁니다. ^^
  • 파리13구 2013/04/11 10:48 #

    ^^
  • ㅇㅇ 2013/04/11 21:50 # 삭제

    어이가 안드로를 달리네요...아예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도 무효화 시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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