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과 제2차세계대전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사할린 분할- 북위 50도를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일본이 분할하고 있었다>

사할린과 제2차세계대전


영문 위키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와 일본이 1905년에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 북위 50도선 이하의 사할린 남부를 일본에게 넘기는 것에 합의했다. 러시아는 섬 북쪽의 3/5을 보유하게 되었다.러시아 내전에서의 시베리아 개입 동안, 즉 1920-1925년 동안 일본이 섬의 북부도 잠시 점령했다.


남 사할린은 일본 소유였고, 가라후토 청이 되었고, 수도는 도요하라, 즉 오늘날의 유즈노사할린스크였고, 조선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었다.


1945년 8월, 얄타협정에 따라, 소련이 사할린을 차지했다. 소련은 만주에서의 전략적 대공세의 일환으로 남부 사할린을 공격했고, 이는 연합군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고, 일본이 항복하기 4일전인 1945년 8월 11일에 공격을 시작했다.


소련군 56군단은 79보병사단, 제2 보병 여단, 제5 보병 여단 그리고 214 기갑여단으로 구성되었고, 이 군단이 일본군 88사단을 공격했다. 붉은 군대가 일본군에 비해서 3:1로 수적인 우세에 있었지만, 소련군이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진격할 수 없었다.


소련군 113 보병여단과 365 독립 해군 보병대가 8월 16일에 사할린 서부 해안 마을인 도로 Tōro (塔路) 에 상륙한 후에야, 소련은 일본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 상륙 이후 일본의 저항은 갈수록 약해졌다.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되었지만, 대부분 산발적이었고, 8월 21일까지 계속되었다. 8월 22일-23일 대부분의 잔여 일본군이 휴전을 선언했다. 소련은 1945년 8월 25일에 수도인 도요하라를 점령하면서, 사할린 점령을 마무리했다. 일본측 자료에 따르면, 소련 침공으로 2만명의 일본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한다.




덧글

  • 에이브군 2013/04/09 15:34 # 답글

    일본에게 사할린이나 쿠릴열도는 딜레마적인 존재라고 보는 시각도 있더군요. 실효지배를 무시하고 독도나 쿠릴열도에 권리를 강화하면 다오위다오쪽에 중국의 권리가 강화되고 반대로 그쪽에 대한 목소리를 낮추면 다오위다오와 나머지 일본의 실효지배범위의 정당성이 보존되고요.

    이런 딜레마를 생각할때 일본의 실효지배지에 대한 권리주장의 '80%'는 국내정치를 위한 쇼인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3/04/09 15:36 #

    네, 그렇게 해석 가능합니다.
  • 2013/04/09 15: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09 15: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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