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소련간의 종전이 지연된 이유는?(3)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일본항복]
[일소전쟁]
[8월폭풍 작전]


새롭게 발굴된 문서 자료들에 따르면, 하타가 협상을 제안한 8월 17일부터 정전협상이 타결된 8월 19일까지의 이틀 동안, 소련군 지휘부는 가능한 더많은 영토를 장악하려고 노력했다. 8월 18일 소련군 참모총장 이바노프는 일본군이 항복하고, 실제로 무기를 내려놓기 전까지 일본의 정전 제안을 무시하라고 전부대에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소련은 일본측의 정전 제안을 묵살했다. 또한 소련은 관동군이 항복하기 전에, 만주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기로 결심했다. 바실레프스키는 트랜스바이칼 전선군, 제1극동 전선군 사령관들에게 즉시 특별 기동군을 편성, 창춘,묵던,지린,하얼빈을 가능한 빠르게 장악하라고 지시했다.


소련군은 창춘을 8월 20일에, 묵전과 하얼빈을 8월 21일에, 요동반도를 장악한 것은 8월 28일이었다.


스탈린은 이같은 바실레프스키의 느린 진격속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요동, 특히 대련 항이 스탈린의 주요 관심사였다. 왜냐하면 스탈린은 미국대사 해리먼으로부터 미국은 대련의 독립적 지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소련 붉은 군대는 관동군을 패배시켰지만, 이 승리는 스탈린의 단지 일부 목적에 불과했다. 소련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일본 패배 뿐만아니라 얄타에서 약속받은 땅을 장악하는 것이었고, 가능하다면 그것보다 더 많이 차지하는 것이었다.




덧글

  • 솔까역사 2013/04/09 12:54 # 답글

    스탈린이 악착스레 차지한 저 땅들이 지금은 러시아의 영토가 아니군요. ^^
  • 파리13구 2013/04/09 12: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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