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고이치가 제안한 종전 방안은?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기도 고이치>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일본 제국주의]
[일본 항복]


독일이 패망하고,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패배가 확실시된 상황에서, 1945년 6월 8일 어전회의 The Imperial Conference 가 열렸고, 회의 결과로 장래의 전쟁지휘를 위한 지침 Outline to be Followed in the Future for Guiding the War 이 채책되었다. 이 지침은 육군의 주장에 기초해서, 제국의 재산과 국체 “"defending the Imperial Estate”" and “"Preservation of Kokutai, the Imperial System (Polity),”"를 지키기 위한 일본 본토 방어 전쟁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한 강력한 정책의 수립을 촉구했다. 한편,소련과의 협상도 강조되었다. 전쟁에서의 일본의 장래 입장이 소련, 특히 중국과의 굳건한 외교를 통해 이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군부의 결사항전 입장이 일왕의 최측근이자 옥쇄관인 기도 고이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같은 날인 6월 8일, 기도가 전쟁 종결을 위한 가설적 계획이란 문건을 작성했다.Tentative Plan for the Termination of the War.


기도는 전쟁 지속에 따른 일본 대중의 불만의 고조를 우려했고, 이같은 불만이 일왕을 향하게 될까 두려웠다. 만약 일본이 전쟁을 끝낼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독일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지도 몰랐고, 국체의 보존도 보장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기도는 육군이 평화를 수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결론에 따르면, 전쟁을 끝낼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왕의 권위로 군부의 반대를 잠재우는 것 뿐이었다.


기도는 영미와의 직접협상 보다는, 소련의 중재를 추진하는 편이 일본의 안전을 위해 더 유리하다고 보았다. 일왕이 모스크바에 친서를 보내서, 일본 점령지의 포기, 해외 주둔 일본군의 철수, 일본군의 부분 무장 해제를 약속하면서, 명예로운 평화를 보장받는 종전 방안이었다.


같은 날인 6월 8일, 기도는 이 문서를 일왕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히로히토가 기도에게 이 계획을 즉시 실행에 옮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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