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5월의 스탈린,트루먼,히로히토...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일본 제국주의]
[일본 항복]

45년 5월의 스탈린,트루먼,히로히토...


하세가와 츠요시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일본의 관점에서, 오키나와 전투 (1945년 4월 1일부터 6월 23일)가 나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은 더이상 소련의 중립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고, [4월 5일, 몰로토프, 사토 일본대사에게 소련이 일소중립조약을 갱신할 의도가 없음을 통지했다], 4월 7일에 새롭게 구성된 스즈키 간타로 내각은 본토결전 이전에 평화를 결심해야만 하는가의 문제로 분열상태였다.


예기치않게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소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도전에 즉시 직면하게 되었다. 그의 대 소련 정책은 일관성이 없었고, 처음에는 강경했다가. 곧 관대해졌고, 이는 트루먼에게 독일 패배 이후의 전후세계에서의 소련의 역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태평양전쟁 이후의 소련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동시에 트루먼은 일본에 대한 무조건항복 요구를 수정해야 되는가라는 문제와 일본과의 전쟁에 소련이 개입하는 문제를 환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해야만 했다.


한편 스탈린은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자신의 정책을 조정해 나갔다. 소련이 일본과의 중립조약 갱신 불가를 통보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미국에게 소련이 얄타협정을 지킬 것이라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 일본에 대한 기습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조약의 구속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였다. 상황이 스탈린에게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두개의 중요한 관심사가 있었다 : 소련이 전쟁에 개입하지 전에 전쟁이 종결되지 않을까? 그리고 스탈린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새로운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얄타협정을 어기지 않을까하는 근심이었다. [얄타협정에서 미국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전제로 극동에서 양보를 한 것이기 때문에, 소련이 참전하지 못한다면, 얄타에서 소련이 얻은 성과가 무위가 될 위험이 있었다]


앞으로 몇 달동안, 3명의 지도자들이 각각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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