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부가 소련의 중립에 집착한 이유는?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일본 제국주의]
[일본 항복]


1945년 4월, 일본군 당국은 소련을 전쟁에서 배제시키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일본군 참모본부의 제12국의 수케다카 다네무라 Tanemura Suketaka 국장은 미국과의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 소련을 전쟁에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4월 29일, 다네무라는 소련에 대한 우리의 장래 정책에 관한 의견 Opinion Regarding Our Future Policy toward the Soviet Union 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의 보고서는 소련에 대한 일본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태평양전쟁의 지속을 위해서 이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만약 소련이 중립조약을 파기한다면, 일본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네무라는 소련의 중재로 전쟁을 종결짓자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의 어떠한 협상도 국체의 파괴로 귀결될 것이고, 이는 일본 민족의 멸망에 다름아니다는 것이었다. 만약 성공 가능성이 있다면, 소련과 영미 동맹간의 일본 및 중국 정책에서의 입장 차이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목표는 다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일본-소련 동맹, 일본-중국-소련 동맹의 결성 혹은 최소한으로 소련의 중립.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본은 소련이 요구하는 어떠한 양보에 대한 요구도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은 만주, 요동반도,남부 사할린,대만, 오키나와, 쿠릴 북부,조선을 포기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일본은 동철철도도 소련에게 넘기고, 어업 조약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에게 1894-1895년 청일전쟁 이전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네무라의 주장의 핵심은 전쟁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 소련의 중립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소련의 중립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일본은 이를 시도하는 것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참모본부와 육군부의 장교단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주전파의 결사항전 논리가 나왔고, 이 논리의 전제는 소련이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자, 주전파의 결사항전 논리의 기반이 붕괴되고 말았고, 이는 일본 주전파가 평화파의 항복논리에 굴복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하세가와 츠요시 Tsuyoshi Hasegawa 의 주장이다. 따라서 일본의 항복에는 원폭보다는 소련의 전쟁 개입이 더 결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덧글

  • 리리안 2013/03/25 18:03 # 답글

    만주, 요동반도,남부 사할린,대만, 오키나와, 쿠릴 북부,조선이면 일제의 외지 전부 아닌가요...그 정도로 미국에 관한 공포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 파리13구 2013/03/25 18:07 #

    그렇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3/03/25 19:22 # 삭제 답글

    케이크 줄 생각은 없는데, 케이크 얻어 먹을려다 못 먹고 욕을 퍼풋는 사람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 파리13구 2013/03/26 10:09 #

    ^^
  • 솔까역사 2013/03/25 20:57 # 답글

    이미 전세가 기울었기 때문에 소련의 참전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소련의 중립은 일본의 희망이지 누가 소련의 입장이었어도 떡고물을 놓치지 않았을 겁니다.
    안타까운 점은 소련이 참전하기 전에 항복했다면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 ㄱㄱ 2013/03/26 00:01 # 삭제

    이미 전세가 기울어도 고집불통으로 항복을 안하겠다는 게 당시 일본 수준이라고
    사료에서 아무리 계속 밝혀도 안보여 안들려 딴소리.
  • 갈천 2013/03/26 12:19 # 삭제 답글

    소련이 참전한 후 만주와 일본 북부 섬에서 10만명 정도의 전사를 낼 정도로 핏값을 치루었다는 슈타인호프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파리13구님의 주장대로 일본이 소련의 중립을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결사항전을 각오했기 때문에 소련의 대일참전이 일본 항복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항복의 결정적인 요인은 역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폭탄입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일본이 이미 항복을 결심하고 소련에게 미국과의 중재를 요청한 상태에서, 소련은 일본의 중재요청을 거부하고 대일참전을 했다는 것입니다.(이정식. 대한민국의 기원)

    따라서 대일참전 후 소련의 희생이 얼마나 발생했는가 여부와 무관하게, 1945년 8월 초일본제국은 이미 몰락상태로 조건부 항복이냐 무조건 항복이냐의 선택 시점으로 몰려있었고 원자탄을 맞고나서는 무조건 항복쪽으로 가고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 파리13구 2013/03/26 12:38 #

    하세가와 츠요시 Tsuyoshi Hasegawa 의 주장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 wizard 2013/03/28 23:28 # 답글

    당시 일본군의 일억총옥쇄는 명분일 뿐입니다. 이미 일본군 수뇌부들 사이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고 조기종전을 바라고 있었죠. 소련에 대한 중재요청은 그야말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로 잡고싶은 심정에서 나온 것이죠. 전 일본이 대미전쟁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전략의 일관성 결여를 보였다라고 생각합니다. 일본군의 원래 전쟁의 목적은 진주만을 타격하여 미해군을 철저히 부순 후 그 시간을 이용하여 남방의 자원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장기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철저하게 타격하였어야 할 진주만에서 보다 필요했던 추가공격을 하지 않고 돌아서죠. 이는 미국과의 조기강화를 위한 배려였다라고 생각되지만 이건 완전한 판단미스입니다. 또 미드웨이 해전의 경우도 빠르게 전과를 활대하여 미국과의 조기강화를 이끌어낸다라는 복안이었겠지만 무리한 원양작전으로 여연합함대의 대타격을 불러 이후 미군의 공세를 스스로 초래하죠. 애초부터 미국과의 개전을 피하거나 개전을 결심했다면 철저한 진주만의 타격후 자원을 확보한 후 지구전 전략을 취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래 일본의 작전계획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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