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공격이 일본의 항복에 결정적이었나?" 유럽외교사

[자료] 일왕항복선언문 - 1945년 8월15일...

[제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
[일본 제국주의]
[스탈린][트루먼]
[일본 항복]


소련의 만주 공격이 일본의 항복에 결정적이었다!


AP통신 보도
2010년 8월 14일


미국이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할 동안, 소련군 160만 대군이 동북아시아의 일본군에 대한 기습 공격을 단행했다. 불과 몇일만에 히로히토 일왕의 일본군 100만이 붕괴하게 되었다.


만주에서의 일본에 대한 소련의 공격은 제2차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의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이는 같은 주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 투하에 가려서 역사책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역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소련의 공격이 미국의 원폭 투하보다 전쟁을 끝내는데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 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소련 침공에 대한 공포가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하도록 강제했고, 당시 일본은 미국이 소련보다는 더 관대할 것이라 믿었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일본군은 1939년에 몽고를 침략하면서 러시아와 교전했다. 이 노몬한 전투에서의 패전으로 도쿄는 소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할수 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소련은 태평양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에 도쿄는 미국,영국,네덜란드와의 싸움에 집중했고, 이것이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기습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하지만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하면서, 당시 필리핀,오키나와,이오지마에서 연전연패 중이었던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종전 중재를 위해서 모스크바와 접촉했다.


하지만, 소련의 스탈린은 이미 워싱턴과 런던과의 비밀 합의를 마친 상태였고, 스탈린은 독일의 항복 후 3개월안에 일본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스탈린은 일본의 중재 요청을 묵살했고, 만주 국경에 100만 대군을 동원했다.


1945년 8월 9일 8월폭풍작전 Operation August Storm 이 개시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이었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날이었다. 이 소-일전쟁 Soviet–Japanese War 으로 불과 2주만의 전투로, 일본군 84000명과 소련군 12000명이 전사했다. 소련군은 일본 본토의 훗카이도의 50km 앞까지 진격했다.


하세가와 Tsuyoshi Hasegawa 의 연구에 따르면, 소련군의 전쟁 개입이 원폭 투하보다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는데 결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소련의 침공으로 일본이 모스크바의 중재를 통해 전쟁을 끝낼수도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세가와는 최근에 적에 대한 추격 "Racing the Enemy" 을 출간, 태평양전쟁의 종전 과정을 연구했고, 미국,일본 자료 뿐만아니라 비밀이 해제된 소련 자료도 참고했다.


"일왕과 일본 정부내의 평화파는 미국이 소련보다는 일본에 대해 더 관대할 것이라 기대하고 종전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하세가와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 지도부는 미국의 원폭 투하에 따른 대량 인명 손실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 140000명, 나가사키 80000명), 만약 일본이 만주와 조선만을 지킬 수 있다면, 연합국의 일본 침공에 저항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런던 군사박물관의 처맨의 주장에 따르면, 바로 소련의 침공으로 이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도쿄의 지도부는 이제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았다는 점을 절감하게 되었고, 이런 맥락에서 소련의 8월폭풍작전은 원폭투하보다 일본의 항복 결정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소련의 전격적인 8월폭풍작전에 대해서, 당시 일본의 전시 총리인 스즈키 간타로는 내각에게 항복을 강요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 "만약 우리가 오늘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소련이 만주,조선,사할린 뿐만아니라 훗카이도도 점령할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끝내야 하고,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 "If we miss (the chance) today, the Soviet Union will take not only Manchuria, Korea and Sakhalin, but also Hokkaido. We must end the war while we can deal with the United States."


런던 정경대학의 리에벤 Dominic Lieven 은 서양에서의 반소 감정 때문에 소련의 군사적 업적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매우 소수의 영국인 미국인만이 극동에서의 소련의 공세를 적절하게 해석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심지어 러시아에서 조차도 극동에서의 소련의 공세가 대체로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련의 승리 규모가 전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소전쟁에서의 소련 전사자 12000명은 독소전쟁에서의 2700만 소련 사망자와 비교 될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군사학 아카데미 원장에 따르면, 작전의 중요성은 엄청났고, 군국주의 일본과의 전쟁을 통해서, 소련은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을 더 빠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핑백

  • 호무호무하게 호무호무하는 중 : 다양한 사료들이 중요한 이유 2013-03-22 22:16:10 #

    ... 지 않을 수 있다고 다른 사료들과 비교도 없이 몽땅 버리는건 성급하죠. 오죽하면 칼날교수님의 본문보다 리플의 비로긴성님들이 제시한 자료들이 더 알차기도 하고 게다가 이 포스팅 이후에 연속되는 파리13구님의 글들만 봐도 소련이 일본에게 눈치 안주면서 뒤통수만 칠 타이밍만 노리려고 매의 눈으로 보고 있는것을 더 잘 알 수 있고요. 오 ... more

덧글

  • 2013/03/20 18:20 # 삭제 답글

    미국이 소련보다는 더 관대할 것...

    나는 관대하다 라는 명번역이 생각나지만

    뭐 일리는 있을듯 하군요.**
  • 파리13구 2013/03/21 10:14 #

    그렇습니다...
  • 대공 2013/03/20 18:44 # 답글

    소련의 참전이 없었으면 도쿄에도 핵이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군요;;;;
  • 파리13구 2013/03/21 10:14 #

    덜덜덜...
  • 파파라치 2013/03/20 19:11 # 답글

    소련이 참전하지 않았어도 결국은 일본이 항복했겠지만, 적어도 8월 15일에는 아니었을 수 있겠군요. 그리고 미국은 더 많은 핵무기를 떨어뜨려야 했을테니 전후에 욕도 더 먹었을테고요.
  • 파리13구 2013/03/21 10:14 #

    그렇습니다.
  • JOSH 2013/03/20 19:14 # 답글

    아, 동감할 수 밖에 없네요....
    로스께 사회주의국가 보다야 차라리 미국이 나았겠죠.

    하지만 뭐 시간문제이지 오십보 백보였을거 같음...

    러시아가 안 움직였다는 전제하에서
    미국에게 더 얻어터지고 끝내냐, 덜 얻어터지고 끝내냐 ...

    한반도는 그대로 미국 점령하에 에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되려 중공군이 항복접수하겠다고 들어왔을 수도...
  • 파리13구 2013/03/21 10:15 #

    덜덜덜...
  • DeathKira 2013/03/20 20:22 # 답글

    하세가와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 지도부는 미국의 원폭 투하에 따른 대량 인명 손실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 140000명, 나가사키 80000명), 만약 일본이 만주와 조선만을 지킬 수 있다면, 연합국의 일본 침공에 저항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일본군답다는 생각은 들지만 진짜 정신이 나갔군요..
  • 파리13구 2013/03/21 10:15 #

    역시 일본군입니다...ㅠㅠ
  • 零丁洋 2013/03/20 21:18 # 답글

    당시 미군의 전략 폭격으로 모든 군수산업 시설이 파괴된 상황에서 항복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 ㅁㅁㅁ 2013/03/21 16:11 # 삭제

    시간문제는 맞는데 정작 그 시간이 언제냐는 거죠 ㅡㅡ
    적어도 일본군부는 소련참전 전까진 그게 당장이라고는 생각 안한듯 합니다
  • 솔까역사 2013/03/20 22:17 # 답글

    막연히 원폭 두방 맞고 항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 간단하지 않군요.
  • 파리13구 2013/03/21 10:15 #

    그렇습니다...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3/03/20 22:41 # 답글

    항복이 조금더 늦었으면 임시정부에서 참전할수도 있었는데
  • 파리13구 2013/03/21 10:16 #

    늦었다면, 일본이 분단되었을 것입니다.
  • 맘판 2013/03/21 00:15 # 답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이은 3번째 원자탄이 출발했었습니다.

    항공기로 미국 본토 내에서 운반중이었는데 일본이 항복을 하는 바람에 비행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 맘판 2013/03/21 00:29 # 답글

    아~ 세번째 원자탄이 출발했던 것은 아니네요.

    세번째 원자탄(나가사키 것과 같은 플루토늄탄)이 준비중이었는데 일본의 항복으로 중단된 것입니다.


    A successful test of the "Fat Man," called "Trinity Test," took place on 16 July at Alamogordo Army Air Field, New Mexico. President Harry S. Truman warned the Japanese that a bomb of extraordinary power would be used, but the warning was ignored. Colonel Tibbets took off in the "Enola Gay" at 0245 on the morning of 6 August 1945, and Little Boy was dropped at 0915 over Hiroshima, Japan. Three days later the "Fat Man" was dropped on Nagasaki.

    During or shortly after the bombing of Nagasaki, Colonel Paul Tibbetts under orders by General Cutis LeMay, dispatched Lt. Col. Classen, the deputy group commander, in the unnamed victor 94 and crew B-6 in Jabit III, together with their ground crews, to Wendover AAFB to stage for the possibility of transporting further Fat Man [Model 1561] bomb assemblies to Tinian. At Los Alamos, the second plutonium core for the third bomb had been fabricated and was ready for shipment to Tinian by special courier Lt. William A. King on a C-54 cargo aircraft of the 509th CG. These shipments were halted by orders from Washington to hold all shipment of atomic bomb components to Tinian, due to the impending surrender of the Japanese.
  • 파리13구 2013/03/21 10:16 #

    감사합니다. ^^
  • 나인테일 2013/03/21 01:37 # 답글

    하긴 맥아더야 일본에서 쇼군 놀이 좀 하다가 집에 갔지만 소련이 점령했다면...(....)
  • 파리13구 2013/03/21 10:16 #

    덜덜덜...
  • 누군가의친구 2013/03/21 02:02 # 답글

    일본이 끝까지 소련과 교섭하면서 소련이 태평양 전쟁의 중재내지는 미국과 분리되길 바랄 정도로 기대할정도로 소련은 일본에게는 큰 위협이었죠. 물론 그 사실은 오늘 8~9시쯤에 올라올 그 사람의 포스트에서는 무시될겁니다.ㄱ-
  • 파리13구 2013/03/21 10:16 #

    네, 그렇게 예상합니다...^^
  • 그들이 말한 7시 2013/04/11 15:04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내용이 알차고 잼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왜냐면 얼마전에 세컨드 프롬 디자스터 다큐 봤는데 나가사키 원폭 내용이었어요
    이미 소련군이 참전한 이상 일본의 지휘부는 일본 황제 체제가 소련의 공산주의 정책에 무너질까봐 두려워 어짜피 항복할것 인데 원폭으로 피해는 불필요한 희생이었다고 나오더라구요. 미국은 소련이 참전한게 더욱세력이 커질까 두려워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과감하게 폭격을 했다고 하구요.
    하여튼 잘봤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