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이란? 유럽외교사

"북한문제 해법을 가진 것은 베이징이다!"

[국제정치학]


베스트팔렌 조약
PEACE OF WESTPHALIA


베스트팔렌 조약은 30년전쟁(1618-1648)을 종결지었던 정치적 타협이었다. 16세기말 이래, 중유럽은 심각한 종교적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는 특히 독일에서 극심했고, 바로 이곳에서 루터파와 칼뱅파 그리고 츠빙글리파가 자신들의 종교적 운명을 결정짓고자 하는 신성로마제국 Holy Roman Empire (당시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치하에 있었다)의 권리에 도전했다.


30년전쟁은 프라하 주교가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을 파괴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갈등 해결에 실패하자, 보헤미아 프로테스탄트들이 황제의 궁전을 몰려가. 그의 신하 2명을 창밖으로 던져버렸고, 가톨릭 왕을 폐위시키고, 프리드리히5세, 팔츠 선제후 Frederick, Elector of the Palatinate를 옹립했다. 이 단계의 전쟁은 가톨릭측의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 Johan Tserclaes, Count of Tilly가 백산전투 the Battle of the White Mountain 에서 프리드리히를 패배시키면서 끝났다.


하지만 이는 단지 전쟁의 한 단계의 끝이었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보헤미아인의 패배로, 유럽의 다른 지역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같은 상황에서, 각각 덴마크 (1625-1629)와 스웨덴(1630-1634)이 가톨릭 황제에 맞서서 싸웠지만, 적을 제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635년 프랑스가 스웨덴편으로 개입하자, 전황이 신성로마제국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전쟁은 그 종교적 성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1635년에 전쟁에 개입한 것은 신성로마제국과의 종교적 갈등 때문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정치적 권력 투쟁 때문이었다.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간의 대결이었던 30년전쟁에서, 가톨릭 프랑스가 프로테스탄트 세력을 지원했던 것이다. 이는 리슐리외의 국가이성론, 즉 "국가의 행동은 개인의 이성이 아니라, 국가이성에 따라 이루어진다."라는 주장에 따른 것으로, 종교적 신념 보다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스웨덴과 프랑스가 힘을 모으자, 신성로마제국을 압도하기에 충분해졌다. 1644년, 그리고 프랑스와 스웨덴이 수많은 승리를 거둔 이후,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결국 1648년 10월 24일, 독일의 뮌스터와 오스나뷔르크 Munster and Osnabruck 에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서명되었다.


30년전쟁은 유럽사 최대의 유혈 전쟁들 중 하나였다. 전쟁은 유럽을 폐허로 만들었고, 독일 인구를 절반 정도 감소시켰다. 도시와 마을이 사라지고, 재산이 파괴되었고, 전염병과 질병이 창궐했고, 전쟁 이후 소집이 해제된 용병과 군인들이 폭도로 돌변했으며, 유럽 문화가 쇠퇴했다. 독일이 30년전쟁의 영향을 극복하는데는 거의 200년이 걸렸다. 본질적으로, 전쟁은 중세를 끝장냈고, 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힘을 쇠퇴시켰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독일 국가들, 스위스 연방 그리고 네덜란드의 주권을 인정했고, 프랑스는 유럽의 지배적인 국가가 되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조약이 근대 국가 체제 the modern state system 의 법률적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이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분명히 유럽 정치와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조약은 두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Rex est imperator in regno suo , 군주는 자기 영토에서는 곧 황제라는 것이었다. 군주는 자기 영역 안에서 최고의 지위를 가지는 황제라는 원칙이 확립된 것이다. 따라서 유럽과 세계의 모든 영토들은 왕이 다스리는 주권 국가들들에 의해 세분화되고, 그들의 독립적인 권위에 놓이게 되었고, 자기의 영토안에서 주권자인 왕은 다른 누구의 의지(황제,교황)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이 확립되었다. 이 조약으로 특정한 영토에 대한 강력한 절대군주와 그의 개인적 혹은 왕조적 지배가 인정되었다.


둘째, Cuius regio, eius religio 쿠이우스 레지오, 에이우스 레리지오. 라틴어 문장으로, "그의 왕국에, 그의 종교"라는 뜻이다. 즉 지역의 통치자가 그 지역의 종교를 결정한다는 원칙이었다. 이 원칙에 따라, 종교적인 이유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국제법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30년전쟁을 종결지은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은 근대 민족국가 주권 modern nation-state sovereignty 의 탄생으로 간주된다. 전쟁은 네덜란드 반란,스페인 무적함대 패배 이후, 이미 서유럽에서 쇠락 중이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몰락을 재확인했다. 이같은 합스부르크 패권의 붕괴로 유럽의 세력균형이 변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과 함께, 베스트팔렌 조약은 유럽에서의 교황권을 더욱 약화시켰다.


이렇게 스페인이 네덜란드 독립을 인정하고, 독일 국가들이 정치적 자치를 획득하고, 오스트리아가 중유럽 통제에 실패하면서, 합스부르크라는 유럽의 최대 제국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그 결과, 베스트팔렌 이후, 유럽 정치의 본질이 변했다. 이는 유럽이 한 명의 황제 아래 통일된다는 가능성을 끝장냈고, 또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정치적 정신적 힘의 독점을 다시 주장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1648년 이후, 자치와 국가간 경쟁으로 특징되는, 국가 주권 national sovereignty 이 유럽 국가들의 주요 통치체제가 되었다.  




덧글

  • 2017/05/17 14:53 # 삭제 답글

    프랑스의 영웅이자 독일의 원수 리슐리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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