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카터 정권이 크메르 루즈를 지원한 이유는?"

키신저의 경고...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베트남 전쟁]
[베트남-캄보디아 전쟁]
[베트남][캄보디아]
[킬링필드][폴포트]


1976년 6월,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이 당결의안을 통해, 베트남을 제1의 적이라 선언했고, 군에게 캄보디아의 베트남인들을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같은 캄보디아에서의 자기 민족의 박해,숙청 그리고 캄보디아군의 국경 도발에 직면해서, 하노이는 캄보디아 응징을 결의했다. 1978년 성탄절에 북베트남은 캄보디아에 대한 전면적 침공을 단행했다. 단지 2주일만에, 베트남군이 크메르 루즈군대를 격파, 수도 프놈펜에 입성, 폴 포트 정권을 끝장냈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다.


이에 대해서 소련은 캄보디아가 폴 포트 패거리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환영했고, 이제 인도차이나에 평화와 자유의 새시대가 열리게 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베이징은 베트남의 침공을 소련의 동남아시아 지배 음모라 비난했고, 세계정복을 노리는 모스크바의 세계 전략의 일부라 해석했다. 따라서 중국은 단순한 비난을 넘어서 1979년 1월 30일 베트남 침공을 단행했다. 중국은 베트남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노이에게 교훈을 주기위해서 침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당시 미국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1970년대 후반기 미국의 캄보디아 정책은 ‘불간섭’과 ‘무관심’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 이른바 ‘동남아시아 피로(fatigue)’ 현상이었다. 크메르루즈의 공포정치가 진행되는 동안 미 대통령이나 의회, 외교관, 기자들은 무관심으로 지냈다. 미 의회에서 캄보디아 학살 청문회가 열리기는커녕, 비난성명도 없었다.


1977년 1월 출범한 지미 카터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면 이른바 ‘침묵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적국인 베트남(또한 냉전시대의 적국인 소련의 지원을 받는 베트남)을 상대로 비밀리에 대리전쟁을 폈다. 중국은 이른바 ‘등소평 루트’를 통해 태국을 거쳐 무기를 크메르루즈 군에 대주어 베트남과의 전쟁을 이어나가도록 지원했다. 미국은 크메르루즈에게 직접 원조를 하지 않았지만,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무기를 대줘 크메르루즈에게 흘러가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 캄보디아 위기가 무력대결로 심화되자, 미국의 카터 정권은 중국과 함께, 캄보디아의 폴 포트 체제를 지원했다. 크메르 루즈가 킬링필드를 통해, 자국민의 1/4을 학살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폴 포트는 미국이 지지하던 론 놀 정권을 전복시킨 장본인이었다. 카터 대통령의 반-러시아 성향이 강했던, 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는 캄보디아 분쟁을 중국과 소련간의 대리전으로 간주했다. 1978년 5월, 그는 폴 포트 체제를 지지하기로 중국과 외교적인 합의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미국은 베트남을 침략자로 규정했다. 

by 파리13구 | 2013/02/22 15:26 | 유럽외교사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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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13/02/22 23:28
미국이 크메르루즈를 지원한 시기가 있었다니 정말 놀랍군요.-_-;;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3/02/23 10:20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shift at 2013/02/23 00:00
정말 멍청멍청한듯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3/02/23 10:20
멍멍멍....ㅎㅎ
Commented by Let It Be at 2013/02/23 14:54
카터성님 클래스가 어디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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