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 이후의 베트남의 중국인들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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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피플>

[베트남전쟁]
[미군 철수][공산화]


미군 철수 이후의 베트남의 중국인들의 운명은?


애초에 미국은 동남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도미노를 막기 위해서 베트남전에 개입했다. 하지만 미군 철수 1973년 3월 29일  이후의 동남아시아를 보면, 예상했던 도미노는 없었다. 적어도, 미국의 베트남 개입주의자들이 주장하던 도미노는 없었다. 그 대신에, 민족,종족간의 혐오와 경쟁이 지역의 새로운 갈들 원인으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월남 공산화 이후 베트남의 중국인들이 맞았던 운명은 어떤 것이고,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무엇이었나?


공산화 이후 다른 어떤 민족 보다도 중국인들이 모욕과 고통을 당했다. 전쟁동안 중국에 대한 베트남의 전통적인 반감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베트남이 프랑스와 미국과 맞서싸우는데 지원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공 함락 이전부터, 반감이 고조되었고, 남중국해에서의 영토분쟁이 발생했고, 중-베트남 국경에서도 충돌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에 직면해서, 베트남은 소련의 지원을 구했고, 그 동안 국내에서 그들은 중국인들에 대한 탄압에 나섰다. 그리고 베이징과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자, 베트남은 중국인들을 탄압하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했다. 1976년말, 하노이 정권은 모든 중국 신문 발행과 중국 학교를 금지시켰다. 1977년초, 국경 분쟁지역의 중국인들을 추방시켰다.


1978년 봄, 중국민족에 대한 탄압에 항의하면서, 중국 정부가 베트남과의 모든 기존 경제 관계를 단절시키고, 기술,경제 고문단을 철수시켰다. 중국은 베트남의 반-중국 정책에 대해서 소련을 비난했다. 중국이 항의했다 : "베트남 당국이 실시하는 모든 반-중국적 조치의 배후에는 소련 제국주의가 있다." "모스크바는 동남아시아를 지배하겠다는 전략계획을 위한 전진기지가 필요하다."


중국은 모스크바와 하노이의 결탁을 두려워했다. 양국은 1978년 11월 3일 소련-베트남 우호 공존 조약을 체결했고, 이는 사실상의 군사 동맹이었다. 소련의 경제,군사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베트남은 소련에게 미군이 버리고간 육군,해군 기지 사용권을 주었고, 이를 통해 모스크바는 중국 공격을 위한 전진 기지를 확보했다.


이후에도 인도차이나에서는 기이한 사건들이 계속되었다. 소련을 지원을 받는 베트남이 중국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캄보디아를 침공, 프놈펜에 공산주의 베트남의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하자, 베트남 정권은 더많은 중국인들을 추방시켰다.  


70년대말까지, 대략 26만명의 베트남의 중국인들이 중국으로 도망가거나, 추방되었다. 그리도 또 다른 40만명은 보트를 타고 타국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by 파리13구 | 2013/02/22 14:31 | Le mond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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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3/02/22 15: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02/22 15:23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3/02/22 16:27
인터내셔널~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3/02/22 16:29
^^
Commented by Real at 2013/02/23 09:31
콩사탕이 싫어서 왔건만.. 지역 애들 콩사탕이 점령을 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서 찬밥에.. 대만이나 싱가포르로 왜 안갔나 싶네요. 베트남쪽 중국인들이라면 중국 콩사탕 싫어서 온 애들이 대부분이잖습니까?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3/02/23 10:17
베트남 마저 공산화되면서 경악했을 듯 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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