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 전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유럽외교사

키신저의 경고...


[베트남]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디엔비엔푸 전투]


디엔비엔푸 전투와 미국의 대응...


프랑스군이 디엔비엔푸 계곡을 선택한 것은 프랑스 주둔지 보급을 위한 항공기 착륙지로 적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계곡 요새가 주변 산악 지형으로부터의 포격에 취약했지만, 프랑스는 베트민 Việt Minh 이 이런 먼 산악지대에 자국 요새를 위협할 만큼의 화력을 가진 대포를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계산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계산이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판명되었다. 프랑스가 요새를 구축할 동안, 베트민이 인력을 동원, 중국이 제공한 대포를 우려하던 곳에 배치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베트민의 대포가 프랑스의 착륙장을 파괴시켰고, 포병이 화력지원을 하는 가운데, 병사들이 계곡으로 진격해왔고, 프랑스군을 포위했다.


1954년 3월 중순, 프랑스는 미국의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없다면, 디엔비엔푸가 함락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미 미국은 베트남에서의 프랑스의 전쟁 비용의 3/4를 부담하던 상황이었다. 이제 프랑스가 원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개입이었다.


프랑스는 미국에 대한 자신의 호소가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지도자들은 만약 베트남이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미국의 안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1월에, 아이젠하워의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만약 도전받게 된다면, 미국은 힘과 결의를 가지고 즉각 대응할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적의 목표물에 대해서 원자탄으로 대응할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주장해온 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아이젠하워와 델레스는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에서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는 미국 합참의장, 매슈 리지웨이가 공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고, 공습이 초래할 지도 모르는 골칫거리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했고, 아이젠하워도 이에 동의했다. 공습만으로 디엔비엔푸에 포위된 프랑스군을 구하는데 역부족인 상황에서, 핵공격은 베트민 뿐만아니라 프랑스군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미국이 자제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군사개입이 한국전쟁에서 처럼, 중국의 개입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뒤에는 소련이 버티고 있었다. 소련은 당시 원자무기 보유국이었다. 당시의 워싱턴의 시각에서, 공산주의는 세계 정복이라는 야욕을 가진 단일체의 운동이었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결정을 미루었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디엔비엔푸는 1954년 5월 7일에 함락되었다.


이상의 사례를 보면, 1950년대 미국이 채택한 핵전략이었던, 무제한 보복전략의 한계를 볼 수 있다. 이 전략의 한계는 위기시에, 미국에게 주어진 선택이 두가지 뿐이라는 것이다 : 핵전쟁이냐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당시 미국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을 자주 선택하게 되었다.


-관련 자료


[핵전쟁]무제한 보복전략 Massive retaliation?
http://kk1234ang.egloos.com/2921947


"디엔비엔푸 전투와 아이젠하워" (1)- (3)
http://kk1234ang.egloos.com/2846228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재정지원한 것은 미국
http://kk1234ang.egloos.com/2514841


덧글

  • 유리멘탈 2013/02/21 16:37 # 답글

    케내디 행정부가 맥스웰 테일러가 릿지웨이의 역할을 하길 바랬다는 이야기도 있죠. 결국 전혀 다른 역할을 맡게 되지만...
  • 파리13구 2013/02/21 16:42 #

    그렇군요...ㅠㅠ
  • 셔먼 2013/02/21 22:49 # 답글

    핵 가지고 있어도 함부로 때리지 못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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