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북한에게 뺨맞고 캄보디아에서 분풀이?

키신저의 경고...


<1969년 미국의 캄보디아의 북베트남 기지 폭격>

[닉슨]
[베트남전][캄보디아 폭격]
[북미관계]
[키신저]


닉슨이 캄보디아 폭격을 재개한 이유는?


1969년 4월, 북한 청진의 동남쪽 공해상에서 정찰 중이던 미 EC-121기가 북한 미그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추락,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대북 군사 보복을 검토했지만, 확전을 우려해서 포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키신저 회고록에 따르면, 닉슨은 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이 아니라, 캄보디아의 북베트남 기지에 대한 폭격 재개를 했다고 한다.


추락 사건 직후, 닉슨 대통령은 키신저 보좌관을 통해 북한의 미그기 이륙 비행장 공습, 원산항 해상봉쇄, 원산항 기뢰 폭파, 잠수정 어뢰를 통한 북한 군함공격 등의 방안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윌리엄 포터(Porter) 주한 미 대사에게 "북한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유사한 도발이 재발할 것"이라며 강경한 대북 대응을 촉구했다.


하지만 미 행정부 내에서 보복공격을 할 경우 부정적인 견해가 많이 제시됨에 따라 대북공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키신저 회고록에 따르면, 닉슨은 정찰기 추락 사건으로 자신이 위축되지 않았다는 기개를 보여주기 위해서, 캄보디아 기지에 대한 폭격을 재개했다고 한다.


회고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원래, 1969년 3월 18일의 캄보디아의 북베트남 353 기지에 대한 폭격은 1번의 공습으로 계획되었다. 닉슨이 1969년 4월에 재공습을 명령한 것은, 부분적으로 하노이와 프놈펜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결과가 기대를 능가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멀리 북한에서의 사건 때문이었다.


닉슨은 북한이 비무장한 미국 정찰기를 격추시킨 사건에 대한 보복을 원했다. 그는 지난 존슨 행정부가 북한의 푸에블로호 사건 도발에 대해서 지나치게 나약한 대응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닉슨은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와 국방장관 멜빈 레어드의 강력한 만류 때문에, 자제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닉슨은 다른 지역에서 자신의 기개를 증명하고자 했다. 나약하게 보이는 것보다 그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또한 그는 하노이가 그가 이 사건으로 쫄았다고 믿게 만들어서는 안되는 외교적 이유도 있었다.  

by 파리13구 | 2013/02/20 13:27 | 유럽외교사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kk1234ang.egloos.com/tb/292258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