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파키스탄 관계사 (1)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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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파키스탄 관계사 (1)

브루스 리델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다. 특히 파키스탄에서 지하드주의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리고 파키스탄에서의 지하드 국가 출현은 21세기 미국의 최대 악몽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리델의 결사적 포옹 : 파키스탄,미국 그리고 세계 지하드의 장래는 이 파키스탄과 미국간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 왜 일련의 미국 행정부들은 파키스탄에서 민간 정부를 약화시켰고, 군부 독재를 지원했으며, 현재 미국의 국내와 국내에서 위협하고 있는 극단주의 이슬람 운동의 탄생을 촉진시킨 것일까?


우선 미국-파키스탄 관계의 초기 역사를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2차세계대전 동안, 영국령 인도 아대륙이 루스벨트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지원자를 가지게 되었다. 루스벨트는 영국 총리 처칠에게 전후 독립을 약속하라고 압박했다. 이는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미국의 신념의 산물이면서, 전쟁 수행에 대한 인도의 지원을 더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서 였다. 전쟁 말기, 인도군 250만명이 독일,일본과 싸웠다.


당시에 인도 문제 만큼, 루스벨트와 처칠을 분열시킨 것은 없을 정도였다. 이것 때문에 처칠은 사임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결국 루스벨트가 양보했다. 처칠은 인도 독립론에 대해서 완강히 반대했던 것이다. 만약 처칠이 1945년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인도가 독립을 쟁취하는데 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처칠은 막후에서 인도의 분할을 추진했고, 파키스탄과 그 건국의 아버지 무함마드 진나를 도왔고, 이는 간디와 그의 새 국가에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 역사가에 따르면, "진나가 파키스탄의 아버지로 간주된다면, 처칠은 그 삼촌이었다."


처칠 후임의 영국 노동당 정권은 인도에서 빠져나오기를 열망했고, 전후 영국의 국내문제에 집중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인도 분할을 출구 전략으로 간주했다.


미국에서 루스벨트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인도 아대륙의 자유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소련과의 냉전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통일된 인도를 선호했고, 간디에 동정적이었다. 미국인들은 파키스탄에 대해 동정적이지 않았다. 트루먼은 1947년에 탄생한 파키스탄을 승인했지만, 의미있는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독립 이후에 엄청난 문제들에 직면했던 파키스탄은 미국의 지원을 원했고, 특히 5억 달러 상당의 무기 지원을 희망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다른 지역에 전념하고 있었고, 이 요구
를 수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트루먼 행정부는 파키스탄 원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파키스탄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서 싸워주길 원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이 이를 거부했다.  



참고- 브루스 리델, 결사적 포옹 : 파키스탄,미국 그리고 세계 지하드의 장래


Riedel, Bruce ,Deadly embrace : Pakistan, America, and the future of the global jih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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