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내전 이해를 위해서 알아야 하는 사실들은?" Le monde

프랑스, 말리 내전에 무력 개입 선언


[말리]
[말리 내전]


말리 사태에 대해서 독자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초보자를 위한 조언


영국 런던- 린지 힐섬 Lindsey Hilsum의 블로그
2013년 1월 23일


말리 사태를 주민들에게 샤리아를 강요하는 잔인무도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나약하지만 선량한 말리군과 정부를 돕기 위해서 개입한 프랑스군 간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것은 쉽다.


물론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말리 사회의 민족 분열은 매우 중요하고, 말리 내전은 부분적으로 부패한 국가와 약탈을 일삼는 군부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 말리 북부는 2000년대 초반 이래로 혼란 상황이었다. 당시 알제리 지하드주의자들이 자국에서의 오랜 기간 동안의 내전에서 패배, 국경을 넘어 남쪽의 말리로 도주했다. 방대하고 통치가 허술한 사막지역은 그들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그들은 담배,무기,마약 등을 밀매하면서 수지맞는 장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서양 관광객들과 노동자들을 납치하기 시작했을때, 유럽 정부들은 말리 정부에게 인질 석방을 위한 중재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석방금으로 수백만 유로가 지불되었고, 그 일부를 말리 관리들이 중간에서 착복했다. 인질이 석방되면서, 말리 정부는 더욱 부패하게 되었고, 지하드주의자들은 더욱 부유해졌다.


말리 북부는 유목민족인 투아레그족의 고향이다. 투아레그족은 때로 아프리카의 쿠르드족이라 불리기도 하고, 6개국에 흩어져 살고있고 - 리비아,알제리,니제르,말리,모로코,부르키나 파소, 자신만의 국가가 없다. 그들은 빈곤과 발전 정체로 인한 불만을 가지고 있고, 말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래, 수차례의 봉기를 조직했다. 1970년대 이래, 수많은 투아레그족이 리비아 카디피 대령의 군대에 모집되었다. 그의 사망이후, 카다피의 투아레그족 용병들이 대령이 그들에게 준 무기를 가지고 말리로 돌아왔다. 2012년 1월, 그들이 아자와드, 즉 투아레그족 독립 국가 건설을 위해서 봉기했다.그들은 스스로를 아자와드 해방 민족전선 the National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Azawad (MNLA)이라 불렀다.


말리 정부군은 훈련을 받았고, 어느 정도는 미국 무기로 무장했고, 이는 반-테러리즘 계획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말리군은 민족전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엉망진창인 보급망은 정부군이 굶주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부패의 산물이었고, 무기를 위해서 지불될 돈이 말리 정치인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거의 대부분의 투아레그족 정부군 장교들이 탈영해서, 민족전선에 합류했다. 나머지 병사들은 패주해서 남쪽으로 도주했다.


수도 바마코로 쫓겨온 청년 장교들은 격분했다. 몇몇은 월급도 받지 못했다. 그들의 아내들이 바가지를 긁었다. 2012년 3월 22일, 아마두 산노고라는 이름의 대위가 대통령궁을 습격, 점령했다. 이는 구식의 아프리카 쿠데타였다. 하지만, 군사 반란이 일반적이었던 70-80년대와는 달리, 세상이 변했다. 서아프리카 국가들도 서양 국가들도 말리에서의 군부 통치를 원치 않았다. 따라서, 새 정부가 구성되었고,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문민 정부인 것처럼 보였다. 사나고 대위가 여전히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말리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군사 개입 논의가 있었고, 대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병사들이 말리 북부에서 자신들을 위해서 싸워준다는 생각에 기뻐했지만, 그는 수도 바마코에서의 문민 통치 안정은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권력의 외부로 밀려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리 북부에서, 몇몇 민족전선파가 지하드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 -  알제리인이 주축인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 AQIM , 말리인으로 구성된 안사르 디네 Ansar Dine, 지하드와 통일을 위한 운동 the Movement for Jihad and Unity (MUJAO). 그러던 중 2012년 3월 30일, 안사르 디네,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 민족전선 소속 부대가 말리군이 버리고 간 장갑차를 타고 팀북투로 진입했다. 대부분의 장갑차는 미국의 지원 무기였다.


이렇게 말리 북부를 장악한 민족전선은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대신에, 약탈과 강간이라는 혼란을 자행했다. 나는 팀북투,가오 등지에서 민족전선에 의해 강간당한 소녀들을 치료한 간호사를 만나기도 했다. 민족전선은 非-투아레그 지역에서의 테러로 악명을 높였다. 그러는 동안, 지하드주의자들이 민족전선과 싸우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은 지하드주의자들이 팀북투,가오,키달을 장악했을때 당황하지 않았다. 최소한, 주민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법과 질서를 회복시킬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리인들이 익숙해 있었던 법과 질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흡연자들에게 채찍질했고, 간통이 의심되는 자들을 돌로 쳐 죽었고, 절도 용의자들의 손목을 잘랐다. 몇몇 말리인들은 북부에서 인종주의적 요소가 등장했다고 증언했고, 지하드주의자들이 외국인일 뿐만아니라 주로 아랍계,투아레그족 출신이기 때문에, 그들은 흑인 말리인들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한다. 남쪽에서 흑인 말리인과 군인들은 나라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투아레그족을 비난하면서 공격했다. 50만명이 북부를 떠났고, 말리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고, 15만명의 투아레그족은 외국으로 도피했다.


2013년 1월 23일 현재, 지하드주의자들이 3개의 공항과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고 있고, 사막에서 행동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의 잃은 것을 회복했다 : 이렇게 말리 북부에서, 그들은 국제 이슬람 전사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부터 그들은 어디로도 공격을 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개입 직전의 말리 상황이었다. 나라는 지하드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북부와 외관상으로는 문민정부이지만 실제로는 청년 장교들과 소수의 파벌이 장악한 남부로 분단되어 있다. 민족전선은 혼란상태이다. 유엔은 서아프리카군대의 개입을 승인했지만, 2012년 9월 이전까지 준비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았다. 이렇게 2013년 1월초, 지하드주의자들이 남쪽으로 공세를 전개했고, 잠정적으로 수도 바마코를 위협할 정도였다. 프랑스가 2013년 1월 11일에 공습을 개시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바마코의 정치인들은 마치 위기가 없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 말리군은 여전히 나약하고 훈련이 덜 되어있다. 내가 만난 말리인들은 그들의 군대를 믿지 않았다. 현재 프랑스인들이 환영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이전에도 다음을 경험한 바 있다 : 한때 해방자로 간주되던 사람들이 곧 점령자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말리 사태는 단지 지하드주의자들을 격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리가 제대로 기능하는 하나의 국가로 재건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덧글

  • 떠리 2013/02/05 14:28 # 답글

    지하드는 참 끈질기기도 하여라..
  • 파리13구 2013/02/05 14:48 #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ㅠㅠ
  • 셔먼 2013/02/05 15:47 # 답글

    근본주의자들의 질긴 생명력에 학을 뗄 지경입니다.
  • 파리13구 2013/02/05 15:50 #

    말리의 알카에다는 이미 전이했다고 봅니다.
  • ㅂ12 2013/02/05 23:11 # 삭제 답글

    초보자를 위한 조언이지만 우매한 저로썬 이해하기 힘드네요.
    짧게 읽은 걸 요약하자면
    잔혹한 지하드주의자들이 부패한 말리 정부 지역 일부를 장악했고, 극렬 이슬람군(지하드)의 팽창에 불안을 느낀 프랑스가 내전에 개입한다는 거 같네요.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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