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와 말리 그리고 투아레그족의 관계는?" Le monde

프랑스, 말리 내전에 무력 개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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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피,말리 그리고 투아레그 :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


영국 런던- 린지 힐섬 Lindsey Hilsum의 블로그
2012년 8월 22일


린지 힐섬은 영국 채널4방송의 국제부장이다.
2012년 8월의 글임에 유의하라.



나토가 2011년에 카다피 대령을 전복시키기로 결의했을 때, 나는 그들이 카다피 축출이 아프리카 서부 국가인 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고민했을까 의문이었다. 아무튼 말리 북부를 알카에다에게 넘겨준, 2012년 1월 16일의 투아레그 반란은 카다피 제거로 인한 예기치 못한 결과이다. 


리비아 카다피는 1970년대에 자신의 이슬람 부대를 위해서 유목민족인 투아레그족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투아레그족은 아프리카의 5개국에 산재해 있고, 자신의 국가가 없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쿠르드족이라 불리며, 그들은 훌륭한 전사이고, 그들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그들은 카다피가 아프리카에서 조장한 여러 분쟁에서 그를 위해서 싸웠다. 이것이 그들이 특권층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리비아에서 지방 관리들은 유목민족 투아레그족을 성가신 존재로 간주했고, 그들에게 서류를 발급하거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카다피의 부하들로 간주되었다.


카다피가 몰락한 이후, 수백명의 투아레그족 전사들이 사막을 건너 탈출했고, 그들의 트럭의 뒤에 대공포와 중화기를 싣고 왔다. 그들은 니제르를 통과, 말리로 왔고, 아자와드 Azawad, 즉 말리 북부에서 투아레그족의 독립국 건설을 위한 투쟁을 재개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자와드 해방 민족전선 the National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Azawad (MNLA)이라 불렀다.


투아레그족의 많은 불만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년동안, 말리 정치인들은 부패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그동안 말리 북부는 빈곤과 무법천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투아레그족의 반란은 계획한 것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애초에, 많은 다른 민족들 -아랍인,송가이족,벨라족이 말리 북부에 살고 있었다. 특히 가오,팀북투,키달에 많이 거주했다. 그들은 투아레그족의 지배를 원치 않았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민족전선 MNLA이 마그레브 알카에다가 포함된 지하드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 지하드주의자들은 말리 북부의 사막을 납치와 마약 밀매의 무대로 이용 중이었다. 3월에, 지하드파와 투아레그족이 말리 정부군을 북부에서 몰아냈다.


하지만 민족전선은 새로운 영토를 통치하기 위한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였고, 규율이 없고, 무질서했다. 6월말, 민족전선이 혼란에 빠졌고 지하드주의자들이 반란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민족전선을 괴멸시켰다.


이 과정에서 남부로 도피한 투아레그족은 다시 희생양이 되었다. 다른 말리인들은 불안과 혼란을 자초했고,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투아레그족을 비난했다.


현재 투아레그족은 모리타니아로 도피 중이다. 이같은 도피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북부에서 자행하고 있는 엄격한 샤리아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서양 정부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을 말리 북부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개입하고 있지 않다. (2012년 8월 현재) 수도 바마코의 많은 사람들은 이제 나토가 그들을 도울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나토가 카다피 대령을 축출하면서 투아레그 반란이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토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부터 말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개입해야 한다고 보고있다.  




덧글

  • 셔먼 2013/02/05 15:28 # 답글

    카다피 이놈은 죽어서도 민폐군요.
  • 파리13구 2013/02/05 15:33 #

    엄청난 사람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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