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초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설에 대한 영국의 대응은?" 유럽외교사

처칠, 뮌헨협정에 대해서...^ ^

[체코 위기]
[뮌헨 협정]


"외교에서 알고도 당하는 경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영국정부는 히틀러가 1939년 3월 16일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를 점령하면서, 이제 더이상 히틀러를 믿어서는 안된다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임벌린의 영국의 유화정책 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 :

"영국이 유화정책을 포기한 이유는?" 1939년 http://kk1234ang.egloos.com/2895846 ]


하지만, 도널드 와트에 따르면, 독일의 프라하 점령 이전인 38년 12월, 비밀 정보망을 통해서 이미 영국 정부는 히틀러가 뮌헨에서의 평화 약속을 깨고, 도발을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 가능성이 우려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관점에서,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은 독일의 영국본토 공습을 위한 전진기지 확보에 다름아니었다. 따라서, 이 경우 영국의 대륙 분쟁 개입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당시 영국이 대륙에 파견할 수 있는 해외원정군 규모가 2개 사단 규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력의 한계에 직면한 영국은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그리고 미국등과의 협의를 통해 이에 대응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은 고립주의를 이유로 이 문제에 개입을 꺼렸다.


이에 핼리팩스 장관의 영국 외무부는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와의 공동 대응을 모색했다. 벨기에의 경우, 1936년 10월 국왕 레오폴트의 중립 선언으로, 벨기에는 서양과의 새로운 접촉이 독일을 자극시켜, 자국의 중립을 파괴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프랑스의 경우, 자신의 비밀 정보를 근거로, 독일의 침공은 벨기에 혹은 스위스 방면에서 예상되기 때문에, 영불 양국이 네덜란드 뿐만아니라 이들 나라에 대해서도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도, 독일의 침공위협이라는 현실을 외면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1939년초, 독일의 네덜란드 침공설에 대해서, 영국을 중심으로한 각국이 이를 예상했지만, 각국의 입장차이 때문에 공동대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같은 서양의 분열은 1940년 5월에 치명적인 것으로 되돌아 올 것이었다.




덧글

  • 토나이투 2013/01/22 21:39 # 답글

    정말 '알고도 당한다'가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일수가 없군요
  • 파리13구 2013/01/23 08:14 #

    그렇습니다.
  • 셔먼 2013/01/22 23:00 # 답글

    설마설마 하다가 관광당한 꼴이네요.
  • 파리13구 2013/01/23 08:14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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