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관계]엘리제 조약 50주년을 기념하며... Le monde


<엘리제 조약에 합의한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와 프랑스의 샤를 드골>

[독불관계]
[프랑스][독일]
[드골][아데나워]


엘리제 조약 50주년

Traité de l'Élysée

-독불이 원수에서 친구로 거듭난지 50년이 되다.


프랑스-독일 우호조약, 즉 엘리제 조약은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와 프랑스의 샤를 드골이 1963년 1월 22일에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체결한 상호조약이다.


샤를 드골의 개인사를 보면,그에게 독일 이상의 역사적 원수는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그가 독불협력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것은 어떠한 배경하에서 였을까?


물론, 프랑스가 라인 강 너머의 옛 적과의 제휴를 통해, 영미의 압력에 취약한 자국의 위치를 보강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생각이 아니였다.


이미 1926년, 프랑스 외교관, 자크 세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대적하기 보다는 협력하는 것이 더 낫다.프랑스 와 독일이 화해하면 우리는 그만큼 영미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드골의 시각에서 1963년 프랑스의 상황은 암울했다.1962년 9월, 영원한 프랑스 영토라고 생각되던 알제리가 독립을 했고, 프랑스 제국은 그 역사적 종말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또한 영국과 미국은 항상 프랑스에게 매정했다.1962년 12월, 영국의 해럴드 맥밀런 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바하마 제도의 나소에서 만나, 미국이 영국에게, 잠수함에 탑재하는 폴라리스 핵미사일을 제공하는 협정에 조인했다.


드골은 이 소식에 격노했다. 이런 영미간의 합의가 프랑스와의 사전 협의없이 프랑스의 등뒤에서 진행되었고, 이후 프랑스는 미국과 논의한번 해보지 못하고, 유사한 조건으로 이 미사일을 제공받음으로써 모욕까지 당했다.


영국에 대한 샤를 드골의 기본적인 방침은 복잡미묘한 것이었다.드골은 영국이 유럽 과 미국 사이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으려 한다고 추정하기는 했지만, 만약 런던이 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유럽이라기 보다는 대서양 반대편의 국가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정확했다.


1962년 12월의 외교 굴욕으로 격분한,이 프랑스 대통령이 1963년 1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프랑스는 영국의 유럽공동체 가입신청을 거부한다고 발표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즉, 영국이 미국의 위성 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유럽 국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의 영미세계에 대한 견제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 같은 해 1월 22일, 독일 프랑스 우호 조약이었던 것이다. 이는 프랑스가 영미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독일과 협력한다는 것이고, 그 무대는 유럽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드골의 입장에서, 독불화해의 출발은 유럽에서의 영미권에 대한 복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식민지도 사라지고, 영미는 항상 프랑스를 엿먹이는 상황에서, 위대한 프랑스를 실현할 수 있는 무대는 유럽이었고, 그것은 독일과의 새로운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 것이, 독불협력을 추진한 드골의 기본입장이었던 것이다.


이 조약의 의의는, 19세기 이래로 철천지원수 였던 , 독일 프랑스 양국이 상호 우호라는 관계의 새로운 역사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외교사에서의 사건이었다.


엘리제 조약은 국제문제,국방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의 독일과 프랑스간의 협력을 목표로 한 것이다. 정치 분야에서, 군사 수뇌부 기구 혹은 양정부간 기구의 조직을 약속했고, 이는 외교,국방 분야에서의 양국간의 협력을 위한 것이었다.


1963년 1월 22일의 엘리제조약 이후의 독불관계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63년 7월 5일 독불 청년사무소 개설 l’Office franco-allemand pour la jeunesse (OFAJ)


1980년 2월 5일 직업교육 교류를 위한 독불위원회 구성 Secrétariat franco-allemand pour les échanges en Formation Professionnelle (SFA) 이 조직은 직업 교육 분야에서의 청년,성인 교류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1990년 10월 2일 독불공동 방송국 아르테 ARTE 설립

아르테는 모든 진지한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유럽의 문화 채널이며, 유럽이란 세계, 특히 프랑스와 독일을 향해 열린 채널이다.

아르테의 탄생은 하나의 비전이고, 이는 프랑수아 미테랑, 헬무트 콜 그리고 로타르 스파쓰 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다. 아르테 방송국 설립의 아버지들은 프랑스인과 독일인들간의 문화적 화해와 유럽의 문화적 통합을 장려하기 위해 텔레비전 채널을 만들어내는 일을 해냈다. « 방송국은 문화적이고 광의로 국제적이며, 국민들간의 상호이해 증진과 화해를 고무시키는 텔레비전 방송물을 구상하고,제작하고,방송하고, 인공위성이나 모든 다른 수단을 통해 이것을 전파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


1994년 5월 31일 독불공동 바칼로레아 탄생 «l’AbiBac»

이 대학입학자격 시험은 양국에서 인정되며, 양국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받기위한 자격을 부여한다.


1997년 9월 19일 바이마르 협약- 독불 대학 창설 l’Université franco-allemande (UFA)


2001년 5월 17일 프랑스와 독일간의 작은 조약 서명. 독불 공동제작을 위한 지원 기금 마련


2013년 1월 22일 엘리제조약 50주년 기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올랑드 대통령이 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공동 각료회의에 참석하고 메르켈 총리의 연설을 듣기 위해 의사당도 찾을 예정이다.




덧글

  • 계란소년 2013/01/22 11:47 # 답글

    영국은 여전히 박쥐적이더군요. 유럽연합의 대표적인 강대국이지만 유로통화권도 아닌 것이...요즘같은 EU 위기상황에선 탈유로 성향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 파리13구 2013/01/22 11:45 #

    금주 중에 캐머런이 유럽연합에 대한 영국의 입장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영국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바랍니다.
  • 셔먼 2013/01/22 13:38 # 답글

    역으로 당시 영국과 미국은 프랑스를 말 안 듣는 꼴통 국가로 취급했었죠...
  • 파리13구 2013/01/22 13:41 #

    샤를 드골의 프랑스 아닙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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