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협정 직후 히틀러가 영국에 분노한 이유는?" 유럽외교사

처칠, 뮌헨협정에 대해서...^ ^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과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

[뮌헨협정]
[유화정책]
[히틀러][체임벌린]


"뮌헨협정 직후 히틀러가 분노한 이유는?"


역사가 도널드 와트의 어떻게 전쟁이 발발했나?에 따르면, 히틀러의 눈부신 외교적 승리라 평가할 수 있는 뮌헨협정 1938년 9월 30일 이후 히틀러의 분노가 오히려 고조되었다고 한다. 총통의 분노의 대상은 영국과 체임벌린 영국총리에 대한 것이었다.


처칠이 영국 정부의 굴욕이라 평가했고, 노동당의 애틀리가 영국 최악의 외교적 실패가 규정한 뮌헨협정에 대해서 히틀러가 분노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1938년 9월 29-30일 회담 이후 이탈리아 무솔리니를 전송하는 기차에서,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9월 30일 아침, 체임벌린과의 회동 중, 히틀러의 안색이 창백했고, 총통은 협정 서명에 주저했다. 그리고 세계 언론이 뮌헨협정을 극찬하자, 히틀러의 분노가 폭발했다. 만약 체임벌린이 유럽을 전쟁에서 구한 구세주라면, 유럽에 전쟁 위기를 가져온 아돌프 히틀러는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체임벌린이 평화의 천사라면, 히틀러는 뱀의 역할이란 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히틀러의 분노는 고조되었다.


뮌헨협정에 대한 영국 하원의 토론이 히틀러의 분노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 10월 5일, 체임벌린은 토론과정에서 협정에 대한 찬사를 자제했고, 단지 하원의 공감만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서 히틀러는 10월 9일의 연설에서, 영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제 베르사유 시절의 유혹과 결별할 때라는 것이다 : "우리 독일은 이제 더이상 여자 가정교사풍의 간섭에 대해서 견딜 수 없다. 영국은 자기 앞가림이나 잘해야 하고, 자신의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 영국은 독일 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팔레스타인에서의 아랍인의 반란 같은 문제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1938년 9월의 국제적 위기 과정에서 괴벨스의 선전부와 나치 친위대, 비밀경찰 등이 파악한 독일여론의 추이 때문에, 히틀러는 독일인에 대한 선동 기조를 바꿔야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뮌헨협정에 대해서 독일인들이 극찬하고, 체임벌린을 찬양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인들은 체임벌린이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원했던 것을 주었기 때문에 찬양했던 것이 아니라, 영국 총리 덕분에 평화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독일인들이 환호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체코인에 대한 독일인의 반감을 고조시키려던 괴벨스의 선전 노력은 실패했다. 독일인들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지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만이 독일을 유럽의 지배자로 만들 수 있고, 이를 선동하기 위해서 히틀러는 다른 심리적인 선전공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뮌헨 협정 직후의 선전부장관 괴벨스를 선전 노력이 히틀러를 평화의 승자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면, 이제 독일인들이 전쟁,독일의 힘 그리고 유럽에 대한 지배에 대해 열정을 가지도록 선동하는 것이 되었다. 11월 10일, 괴벨스 등의 핵심 참모들을 대상으로한 비밀 연설에서, 히틀러는 새로운 입장을 공개했다. 즉 지금까지 자신은 독일 대중이 그를 따르도록 만들기 위해서 평화만을 강조해 왔지만, 이제 독일인들이 다른 무엇인가를 원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이는 평화를 통해서는 달성될 수 없고, 단지 힘을 통해서 강제해야만 한다는 입장변화였다. 이제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선동할 때가 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괴벨스의 선전부는 독일군의 늠름함을 강조하는 이미지를 강조했고, 독일인을 위한 생존공간, 즉 레벤스라움에 대한 선전을 강화했다. 독일은 가지지 못한 국가이고, 독일은 독일인을 먹여 살리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고, 확장과 식민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고, 지배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선전이었다. 독일은 국가들간의 계급 전쟁에 개입하고 있고, 독일을 포위하고 있는 독일의 적들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히틀러가 독일의 장교집단을 상대로 전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동안, 괴벨스는 영국을 독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적으로 간주했다. 이렇게 영국에 대한 히틀러의 분노를 독일인의 목소리로 만들려고 괴벨스가 노력했다.


협정 이후 6개월 동안, 영국에 대한 히틀러의 분노가 그의 정책 방향 설정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역사가 도널드 와트의 지적이다. 결국 독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 것은 바로 주적 영국이 될 것이란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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