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정신은 정의에 관한 이견까지 확대되지 않는다!" Le monde

[프랑스]트위터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관용의 한계는?


다원주의,다문화주의,관용,표현의 자유 등이 인정되는 현대사회에서

복수의 견해들에 대해 , 어디까지 관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 관용의 한계가 무엇인가 가 문제가 될 때가 많다.


이 경우, 서로 충돌하는 모든 견해에 대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들어 , 관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런 환경속에서 중요한 것이,

"관용의 정신은 정의에 관한 이견까지 확대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라 본다.


가령, 노예제 같은 현재 인류역사의 절대악의 하나 라고 간주되는 제도에 대해서

사상의 자유라는 이유로, 노예제 옹호론을 관용할 수 있을까? 없다!

이는 노예제가 인간의 평등을 부정하는,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정의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노예제 폐지 이외의 다른 의견을 인정할 수 없고,

관용의 정신은 정의에 관한 이견까지 확대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견해와 의견의 복수성,다원성이 인정되는 다원주의 시대에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용이 용인되는 것은, 그 문제가 절대악과 관련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의의 문제와 충돌하지 않을 경우로 한정된다고 본다.

따라서 모든 의견을 관용할 필요도 없고, 관용해서도 안된다.


또한, 절대악과 관련된 도덕적 논쟁에서 중립을 주장하거나,

그것을 시민의 자유로운 판단에 위임하는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본다.

가령, 노예제 논쟁에서의 링컨의 지적 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적 악이 아님을 전제로 하는 경우에만 도덕성의 문제를 고려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도덕적,철학적,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지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그 정의의 원칙의 핵심은, <옳음>이 <좋음>에 우선함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의 원칙을 확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교육시켜야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견해,신념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협력을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관용의 정신은 정의에 관한 이견까지 확대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표현의 자유가 가지는 책임과 그 한계라 본다.




덧글

  • 빼뽀네 2013/01/10 13:28 # 답글

    그런데 문제는 그 기준이 되는 '정의'를 각각 다르게 정의 내리기 때문에
    현실에선 그야말로 '무관용'이 판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3/01/10 13:30 #

    네, 정치적 차이를 넘어, 시민이라면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의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 빼뽀네 2013/01/10 16:38 #

    네, 그런데 그 '시민'이라는 것이야말로 저를 가장 고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그야말로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공통성을 찾아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많은 우려를 안고 있습니다.
  • 파리13구 2013/01/10 16:40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이지만, 어떤 공화국도 초반에는 공통성이 약한 시절이 있었다는 점은 역사적 위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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