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캐넌과 메테르니히 체제에 대한 향수?" 유럽외교사

"조지 캐넌의 매력은?"

[조지 캐넌]


조지 캐넌과 메테르니히 체제에 대한 향수?


외교정책 전문가로 조지 캐넌의 특징은 보수주의자이자 귀족주의자로, 양차대전을 경험한 20세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욱 차분했던 18-19세기 유럽세계에 대한 향수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19세기 유럽 세계에 평화와 안정을 보장했던 것이 바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설계한 유럽협조체제였다.


1815년 빈 회의에서 메테르니히의 관심사는 오스트리아를 프랑스,러시아 그리고 프로이센으로부터의 경쟁을 감당할 정도로 충분히 강력한 열강으로 보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팽창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했고,이를 위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을 전쟁의 참화로 고통을 겪게만든 프랑스를 징벌하고,복수하는 것과는 다른 정책이 필요했다. 메테르니히는 프랑스의 샤를 모리스 탈레랑 Charles Maurice Talleyrand과 영국의 로버트 스튜어트 캐슬레이 Robert Stewart Castlereagh를 끌어들여서, 러시아의 중유럽 침투와 프로이센의 확장을 막는데 성공했다. 메테르니히가 1815년에 설계한 유럽은 제1차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까지 유럽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근간이 되었다.


1940년대말 조지 캐넌은 19세기초 빈 회의에서의 메테르니히와 탈레랑의 질서회복론과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캐넌은 국제적 안정은 세계대전이 파괴시킨 다극적 질서를 부활시키는데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캐넌은 미국이 유럽과 일본의 열강지위 회복을 위해서 자신의 막대한 경제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련 봉쇄의 부담을 미국 홀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독일이 속한 유럽과 일본과 더불어 나누기 위해서였다.


캐넌의 봉쇄정책의 목표는 매우 중요한 제한된 지역에서의 군사력,경제력 복원만을 지원하는데 있었다. 이를 위한 최선책은 미국이 유럽과 일본에 경제 지원을 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유럽과 일본이 강대국 지위를 회복해서, 이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소련 봉쇄를 위한 다극체제의 동맹세력으로 발전시키고, 동시에 이들 지역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의 발전을 저지시킨다는 것이었다.


그의 초기 저작에서 조지 캐넌이 소련이 지원하는 세계 공산주의의 혁명적 도전이 국제 질서에 제기하는 위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항상 주장했던 것은, 만약 소련이 지리적으로 봉쇄된다면, 다른 나라로의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소련의 코민테른적 욕망은 억제될 것이고, 이를 통해서 소련이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혁명적 국가에서 더 온건한 전통적 강대국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전쟁 이후의 신질서 구상에서, 빈회의 메테르니히가 프랑스에 대한 징벌적 체제가 아니라, 프랑스를 포용해서 오스트리아의 프로이센,러시아 견제에 동참시키는 전후 구상을 했다면, 조지 캐넌은 미국이 경제 지원을 통해 독일과 일본을 지원, 이들을 소련 봉쇄에 끌어들이는 다극적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전후 체제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메테르니히의 빈체제에 매료된 것은 조지 캐넌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후 미국의 외교 정책의 대가, 헨리 키신저의 박사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부활된 세계 :메테르니히,캐슬레이 그리고 평화의 문제 1812-1822년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s of Peace, 1812–22




덧글

  • 파파라치 2012/12/03 12:04 # 답글

    "혁명의 세기"는 "극단의 세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차분했나보군요.
    하긴 빈 체제는 베르사유 체제에 비해서는 훨씬 통찰력과 지혜가 돋보이긴 하죠. 결국 오래가진 못했지만...
  • 파리13구 2012/12/03 12:08 #

    일반적으로 빈 체제를 성공한 체제라 평가합니다.
  • 2012/12/03 12: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3 12: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행인1 2012/12/03 13:09 # 삭제 답글

    메테르니히가 말년에 여장남자로 외국으로 도피했다 하던데..ㄷㄷ
  • 파리13구 2012/12/03 13:15 #

    덜덜덜...
  • 비스마르크 2012/12/03 13:22 # 삭제 답글

    메테르니히도 비스마르크처럼 복덕방 영감을 자처하면서 유럽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던거군요...30년정도 유럽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으니 두체제다 성공한 체제?..
  • 파리13구 2012/12/03 13:42 #

    메테르니히 체제는 대략 100년간의 유럽 평화를 보장해 주었다고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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