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대한 스탈린의 굴욕외교?" 유럽외교사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와 서양"

[제2차세계대전]
[전시외교][대동맹]


시코르스키-마이스키 협정
Sikorski–Mayski agreement

1941년 7월 30일


시코르스키-마이스키 협정은 1941년 7월 30일에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소련과 폴란드간의 조약이고, 폴란드 망명정부의 시코르스키 Władysław Sikorski 와 런던 주재 소련대사 이반 마이스키 Ivan Mayski 가 체결했다.


1941년 독소전쟁의 발발로 소련의 위기를 맞이하자, 스탈린은 독일과 싸우고 있는 국가들로부터 원조를 구하기 시작했다. 영국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의 강한 추천을 받아, 시코르스키가 1941년 7월 5일 런던 주재 소련대사 마이스키와의 협상을 시작했고, 이는 1939년 소련의 폴란드 동부 점령 이후 단절된 폴란드-소련 외교 관계 재수립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1941년 7월 30일, 시코르스키-마이스키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1941년 8월 14일 모스크바에서 양국간의 군사동맹이 체결되었다.


1941년 12월 3일, 폴란드 망명 임시정부 수반인 시코르스키 Sikorski  장군이 크레믈린을 방문, 스탈린과 몰로토프를 만났다. 회담에서 스탈린은 소련이 나치 독일과 체결한 기존 조약이 모두 무효임을 선언했고, 특히 독소불가침조약에 따른 1939년의 소련-독일의 폴란드 분할도 무효이고, 소련수용소에 수감 중인 수만명의 전쟁포로를 석방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소련은 당시 수감중이던 폴란계 포로들을 석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 폴란드인들은 붉은 군대와 함께 나치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과 함께 싸우게 될 것이었다.  안데르스  Władysław Anders 장군의 지휘하에 폴란드인 석방자로 구성된 4만여명 가량의 부대가 결성되고, 폴란드 해방을 위해 붉은 군대편에서 싸우게 되었다.  (장차 폴란드 제2군단  Polish II Corps 이 될 것이었다)

회담에서 스탈린은 전후의 폴란드의 독립 원칙에 합의했지만,  전후의 독립 폴란드의 옛 국경을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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