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에 소련이 영불에게 요구한 것은?" 유럽외교사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와 서양"



[제2차 세계대전]
[독소불가침조약]
[독일의 폴란드 침공]


"1939년에 소련이 영불에게 요구한 것은?"


1938년 9월 20일의 뮌헨협정에서의 영불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평화가 아닌 폴란드에 대한 협박으로 1939년을 시작했다. 1939년초 히틀러는 폴란드에게 단치히를 제3제국에 넘기라고 요구했고, 폴란드 회랑을 가로질러 독일 제국 본토와 동프로이센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허락해주고, 또한 이 도로상에서의 독일의 치외법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폴란드는 이 요구를 거절하고,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독일의 침략행위를 막아주겠다는 보장을 받아냈다.


히틀러의 위협에 따른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1939년 4월, 영국과 소련의 동맹 교섭이 시작되었다.


조지 캐넌에 따르면, 영불과의 동맹 교섭 과정에서 소련은 다음을 요구했다고 한다.


영불은 전쟁시 동유럽의 넓은 지역을 러시아의 재량권하에 두는 것에 동의하는가? 영불은 모스크바가 발트해3국의 후견인이 되는 것에 동의하는가? 이 지역에서 모스크바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그리고 영불은 독일에 대한 군사작전시 폴란드와 루마니아가 소련군의 자국영토 통과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할 수 있는가?


1939년 여름, 스탈린은 이상의 요구를 가지고 영불 그리고 나치 독일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다. 이같은 소련의 요구에 대해서, 영국과 프랑스는 확답을 미루고 시간을 끌었다. 영불은 독일에 맞서기 위해서 소련의 지원이 절실했지만, 자신의 폴란드 동맹국이나 발트해 국가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소련의 지원을 매수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폴란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소련의 중립이 필요했던 독일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히틀러는 러시아와의 문제는 나중에 해결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만약 히틀러가 세계대전의 위험 없이 폴란드의 절반을 얻을 수 있다면, 러시아가 당분간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고, 동유럽의 나머지 지역도 소련과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 조약이 체결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덧글

  • 븕태 2012/11/29 22:52 # 삭제 답글

    영불 외교력의 부재 ... 꾸물거리다가 결국 정작 챙겨야할건 못챙기는
  • 파리13구 2012/11/30 09:35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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