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에 대한 스탈린의 대응은? 유럽외교사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와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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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에 대한 스탈린의 대응은?

1933년 1월의 히틀러 집권에 대해서, 처음에 스탈린은 히틀러를 무시하려 했다. 심지어 스탈린은 나치 세력의 성장에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는 나치가 독일에서 온건 사회주의 세력을 끝장내주기를 원했고, 독일 공산당만으로는 사민당을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사민당 세력의 제거를 통해, 향후 독일 공산당의 성공을 용이하게 만들 계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34년초, 스탈린은 더이상 히틀러를 무시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히틀러 견제를 위한 서양과의 동맹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결정적 계기는 바로 1934년 1월 26일의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 체결이었다.


장래 독일 민족의 생존 공간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치의 경솔한 회담이 있었다. 그리고 1934년 1월 26일, 폴란드와 히틀러가 10년동안의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스탈린에게 충격이었다. 이는 독일이 라팔로 조약의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조약에 따르면, 히틀러는 폴란드와의 협상을 통해 폴란드 회랑에 대한 양보를 얻는 한편, 폴란드는 소련으로부터 빼앗은 우크라이나에서 그 보상을 얻는 거래가 예상되었다.


이같은 러시아에 대한 히틀러의 위협에 직면해서, 스탈린은 나치에 대한 수동적 무시정책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고, 나치 위협의 심각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서양과의 협력을 위한 여러 계획을 승인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소련의 국제연맹 가입, 프랑스 및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군사협정 체결, 사민당을 사회적 파시즘으로 간주해서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한 사회적 파시즘론을 폐기하고, 코민테른이 인민전선론, 즉 파시스트의 공격에 맞서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 및 중산 계층이 힘을 합친 연합세력 결성을 주장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 3개의 대응책은 1934년부터 실천되기 시작했고, 1934년 9월 18일 소련이 국제연맹에 가입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그리고 소련 외교의 이같은 친서방 노선을 주도한 것은 바로 소련 외무장관, 막심 리트비노프였고, 그는 유대인이며, 반-나치주의자였고, 친-서양주의자였고, 매우 능력있는 인물이었다. 




덧글

  • 셔먼 2012/11/28 16:49 # 답글

    스탈린은 폴란드가 나름 히틀러와 적대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협상으로 뒤통수를 쳤군요.;
  • 파리13구 2012/11/29 09:49 #

    스탈린이 이런 폴란드를 가만 놔둘리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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