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과 제2차세계대전 유럽외교사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와 서양"


<사진속의 인물
폴란드 주재 독일 대사 한스-아돌프 폰 몰트케 Hans-Adolf von Moltke, 폴란드 지도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Józef Piłsudski, 독일 선전 장관 괴벨스, 폴란드 외무장관 유제프 베크 Józef Beck
1934년 6월 15일 폴란드 바르샤바>


[전간기]
[독일][폴란드]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

The German–Polish Non-Aggression Pact
1934년 1월 26일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은 1934년 1월 26일에 서명된 나치 독일과 폴란드 제2공화국간의 국제 조약이다. 조약에 의거, 양국은 쌍방 협상을 통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로 약속했고, 10년 동안 무력 대결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독일-폴란드 관계가 정상화되었고, 양국 관계는 베르사유 조약에 따른 영토분할로 인해서 발생된 국경 분쟁 때문에 긴장상태에 있었다. 조약의 결과, 독일은 폴란드 국경을 인정했고, 이전 10여년 동안의 양국간의 관세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게된 동기들 중 하나로 주장되는 것은 그가 1933년 1월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프랑스에게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자고 제안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몇몇 역사가들은 피우수트스키가 공공연하게 재군비를 주장하면서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했던 독일에 대한 공동 군사작전 가능성을 프랑스에 타진해 보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프랑스의 거부가 1934년 1월의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에 폴란드가 서명한 이유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 대한 예방전쟁에 대한 피우수트스키의 요구를 프랑스가 거절한 것이 조약 체결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역사가들이 있고, 그들은 프랑스 혹은 폴란드 외교문서 보관서에 관련 기록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예방전쟁설이 알려진 것은 1933년 10월말로, 관련 소문이 파리에서 보도되었고, 그 소식통은 폴란드 대사관이었고, 대사관은 프랑스 보도진에게 폴란드가 프랑스와 벨기에게게 예방전쟁을 주장했었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당시는 이미 폴란드와 독일이 비밀리에 불가침 조약을 논의 중이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폴란드 대사관이 공개한 예방전쟁 관련 소문은 독일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주장이 있고, 당시 독일은 폴란드에게 1921년 프랑스-폴란드 동맹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 결과,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에서 동맹 논의는 배제되었다.


피우수트스키가 독일과의 불가침조약을 추진하게 된 다른 동기로 제시되는 것은 프랑스의 마지노선 건설에 대한 그의 근심이다. 1929년까지 독일과의 전쟁 시의 프랑스 작전은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의 공세와 함께, 독일의 북쪽 평야 지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29년에 시작된 마지노선 건설로, 독일과의 전쟁시에 프랑스군은 매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프랑스의 동유럽 동맹국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계획을 수립해야만 했다. 이같은 피우수트스키의 우려는 1939년 가짜전쟁 동안에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폴란드 피우수트스키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의 작전 계획 변경에 따라, 독일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이 폴란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히틀러의 권력 장악 직후의 독일 나치 체제의 국제적 고립 상황을 폴란드의 안보 위험을 줄이기 위한 기회로 간주했고, 그 위험이란 폴란드가 독일의 침략의 첫번째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독일의 새 통치자 히틀러가 전통적인 프로이센 방식으로 반-폴란드 노선을 취해올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우수트스키는 히틀러가 그의 전임자 총리인 슈트레제만 보다는 덜 위험한 인물이라 평가했고, 소련을 더 큰 위험으로 간주했고, 이에 따라 그는 프랑스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을 나치 독일에 대한 공동 전선으로 일원으로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하자 이에 반대했다.


불가침조약 협상과정에서, 폴란드는 이것이 과거의 어떤 국제 조약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할 것을 주장했고, 특히 폴란드와 프랑스간의 동맹을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와 독일간의 긴장 완화를 나타내는 이 불가침조약으로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외교적 입지가 약화되었다.


한편, 폴란드는 1932년 7월 25일에 처음으로 조인된 폴란드-소련 불가침조약 the Polish-Soviet Non-Aggression Pact을 1934년 5월 5일에 갱신했다.

한편, 독일-폴란드 불가침 조약은 폴란드가 더 원하던 것이었다. 이것은 1932년 11월에 외무장관에 취임한 베크의 정책노선이었다. 베크는 폴란드 안보에 대한 프랑스의 역할이나 국제연맹식의 집단안전 보장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는 독일의 팽창정책을 알고 있었지만, 그 팽창 방향이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라고 믿었고, 독일과의 우호로 폴란의 권익이 신장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베크의 이같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불가침조약으로 폴란드는 독일과 앞으로 수년동안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와 영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조약으로 국제연맹의 활동이 상처를 받았고, 특히 1930년대 초에 프랑스가 주장한 집단안보론이 타격을 당했다.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으로 독일의 동부 국경쪽이 안정되면서, 히틀러는 재군비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피우수트스키는 히틀러의 의도는 불신했지만, 그가 프로이센이 아닌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점을 중시했고, 가급적 오랫동안 히틀러가 권좌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하지만 독일의 정책은 1938년말에 뮌헨협정으로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차지하면서 급변했고, 폴란드가 히틀러의 다음 목표가 되었다. 1938년 10월 나치의 외무장관 리벤트로프가 단치히 자유시의 독일 병합, 그리고 폴란드 회랑에 도로와 철도를 건설해서 독일 본토와 동프로이센을 연결시키는 것을 폴란드가 동의하는 조건으로, 불가침조약의 갱신을 제안했다. 폴란드는 독일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 결과, 히틀러는 1939년 4월 28일 독일-폴란드 불가침 조약의 폐기를 선언했다.


이후 양국간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독일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덧글

  • 시민1 2012/11/27 17:45 # 삭제 답글

    폴란드가 독일의 요구를 수용해서 조약을 갱신했따면 어떻게 됬을까요?
  • 파리13구 2012/11/27 17:47 #

    단기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폴란드는 사실상의 독일의 위성국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독일의 소련 침공에서 폴란드는 독일편에 가담해서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 시민1 2012/11/27 17:53 # 삭제

    그렇군요..어쩌면 그게 역사적으로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시민2 2012/11/27 23:03 # 삭제

    폴란드가 독일의 위성국이 되어 소련과 전쟁 하는 전개가 어떻게 나은건지요?
  • 행인1 2012/11/27 23:02 # 답글

    1.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기존의 국제관계에 이상이 없기를 바랬다면 피우수트스키는 대체 뭔 생각이었던건지...;;;

    2. 폴란드가 소련과도 불가침 조약을 맺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 파리13구 2012/11/27 23:09 #

    감사합니다. ^^
  • K I T V S 2012/11/28 02:43 # 답글

    저때만 해도 소폴전쟁 승리땜에 폴란드인들은 장미빛미래를 꿈꾸며
    동유럽연방 건설을 꿈꾸었을텐데... 5년 뒤에...-_-;;;
  • 파리13구 2012/11/28 03:11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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