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폴란드 전쟁의 기원?" 1919년 2월 유럽외교사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와 서양"



[제1차세계대전]
[러시아 혁명][러시아 내전]
[소련][폴란드]
[레닌[피우수트스키]


"소련-폴란드 전쟁의 기원?"


Polish–Soviet War


1919년 2월-1921년 3월


영문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중부 동부 유럽의 지도가 크게 변했다. 종전 이전의 1918년 3월 3일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The Treaty of Brest-Litovsk 으로, 러시아는 독일 제국에게 자신의 모든 유럽 영토를 넘겨주었지만, 1918년 11월의 독일 패전과 함께, 이 조약은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서 거부당했다.


하지만 독일은 러시아가 다시 강력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독일은 점령 중이던 유럽내 옛 러시아 영토들, 핀란드,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벨라루스,우크라이나를 재빠르게 독립시켜서 완충 국가들로 만들려했다. 그러나 독일의 패전으로, 중유럽 꼭두각시 국가군 Mitteleuropa puppet states을 만드려했던 독일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러시아가 혁명 이후 내전에 휘말리게 되면서, 이들 신생 국가들은 이를 진정한 독립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한편, 러시아는 이들 영토들의 움직임을 반란으로 규정했지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소련이 너무 약했고, 혁명과 내전으로 인한 혼란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후 폴란드가 1795년의 폴란드 분할 이후 처음으로 독립국 지위를 되찾게 되면서, 123년 동안의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제2공화국으로 재탄생한 폴란드는 옛 점령국가들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서구 열강이 이같은 폴란드의 노력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연합국은 독일이 서쪽에서 상실하게 된 영토를 보상하기 위해서 동쪽의 영토를 인정해주려고 했다. 폴란드 동쪽 국경 문제에서도, 영국측이 제안한 커즌선에 따르면, 버그강 Bug River 동쪽에 거주하는 수백만의 폴란드인들이 러시아 국경선 안쪽에 거주하는 것이 되었다.


1919년 3월, 폴란드의 재탄생


폴란드만이 새로운 기회와 고통을 경험한 것만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동유럽의 신생국들이 이웃 국가들과 영토 분쟁을 시작했다 : 루마니아는 트란실바니아를 두고 헝가리와 싸웠고 Romania fought with Hungary over Transylvania, 유고슬라비아는 리예카를 두고 이탈리아와 싸웠고 Yugoslavia with Italy over Rijeka, 폴란드는 슐레지엔을 두고 체코슬로바키아와 싸웠고 Poland with Czechoslovakia over Cieszyn Silesia, 폴란드는 포젠을 두고 독일과 싸웠고 with Germany over Poznań, 동 갈리키아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싸웠고 with Ukrainians over Eastern Galicia,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가 서로 싸웠고, 러시아와 대립했다.  윈스턴 처칠은 이같은 상황을 두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 "거인들의 싸움이 끝나고, 난쟁이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The war of giants has ended, the wars of the pygmies begin"


소련-폴란드 전쟁이 발발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 국경분쟁은 계획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우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소련과 폴란드의 누구도 대규모 대외 전쟁을 정교하게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폴란드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폴란드는 서 우크라이나 민족 공화국과의 힘든 분쟁에서 방금 승리한 상태였고,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와 분쟁을 치른 상태였다. 폴란드 정부는 여러 국경 지방에 대한 통제권을 명확하게 확립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6개의 통화가 유통 중이었고, 경제는 혼란 상태였고, 몇몇 지역에서는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범죄율은 높았고, 군사 쿠데타의 위험이 높았다.


소련의 상황도 유사했다. 내전이 계속되었고, 경제 봉쇄로 대량 기아가 발생했다. 레닌은 단지 러시아 중앙만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고, 볼셰비키는 강력한 적들에게 포위상태였다. 적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레닌과 볼셰비키는 자신의 국경 밖으로 진격할 상황이 아니었다.


1919년 2월, 폴란드군과 소련군이 최초로 충돌한 것으로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폴란드 피우수트스키의 의도


당시 폴란드 정치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은 피우수트스키였고, 그는 폴란드가 주도하는 동유럽연방을 만들려고 모색했다. 동유럽연방이란, 폴란드의 보호아래 중유럽과 동유럽의 국가들이 연방을 구성하자는 제안이었다. 가입을 제안받은 국가들은 발트해3국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핀란드, 벨라루스,우크라이나,헝가리,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체코슬로바키아 였다.


연방구성을 통한 피우수트스키의 목표는 러시아 제국의 해체였고, 러시아 제국의 영토 정복야욕의 분쇄였다. 하지만, 동유럽연방은 일부 리투아니아인에게는 새로 쟁취한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일부 우크라이나인에게는 독립 열망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으며, 러시아가 이를 반대했고, 프랑스를 제외한 서구 열강의 반대에 직면했다.  피우수트스키의 계획에 대해서 사실상 거의 모두가 반대했다. 특히 자신의 영향권에 대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았던 소련은 이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피우수트스키의 제안은 폴란드 국내에서도 반대를 받았다. 민족 민주당 지도자 로만 드모프스키 Roman Dmowski 는 인종적으로 순수한 폴란드를 주장했고, 소수민족들이 폴란드화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많은 폴란드 정치인들이 다문화주의적 연방 구상을 반대했고, 단일의 폴란드 민족-국가 건설을 선호했다. 샌포드는 피우수트스키의 정책을 동유럽 슬라브 소수민족에 대한 폴란드화에 다름아니라 간주했다.


장래의 폴란드 국경에 대해서, 피우수트스키는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 "우리가 서쪽에서 얻을수 있는 것은 협상에 달려있다. 협상을 통해 독일을 짜내서 영토를 얻어낼 수 있다. 반면 동쪽에서, 문은 열려있기도 하고 닫혀있기도 하다. 그 문을 여는 것과 얼마나 멀리 확장할 것인지는 힘에 달려있다." 폴란드의 동쪽이 혼란상태였기 때문에, 폴란드가 힘만 있다면 가능한 멀리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폴란드는 러시아 내전에 대한 서양의 개입 혹은 러시아 자체의 정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레닌의 의도


붉은 군대의 진격은 전세계 정복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유럽 정복도 아니었다. 강대국이라 할 수 없는 폴란드와 대결은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고, 전세계에 혁명의 불꽃을 일으키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1920년 4월, 폴란드 내륙에 대한 붉은 군대의 주요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 붉은 군대의 병사들과 장교들은 폴란드의 패배는 필연적일 뿐만아니라, 전세계의 억압받은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적인 봉기를 촉발시킬 것이고, 이를 통해 노동자의 천국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미하일 투하쳅스키 장군은 "서쪽으로 진격하라! 白-폴란드의 시체를 넘어서면, 세계혁명의 길이 열린다. 빌노,민스크,바르샤바로 진격하라! To the West! Over the corpse of White Poland lies the road to world-wide conflagration. March on Vilno, Minsk, Warsaw!" 라고 외쳤다.


1919년말, 레닌은 백군에 대한 붉은 군대의 승리에 고무되어, 혁명의 미래를 낙관하게 되었다. 볼셰비키 교리에 따르면, 역사의 진보가 전세계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고, 민족국가는 전세계 공산주의 공동체에 의해서 대체될 것이었다.


폴란드와의 전쟁이 필요한 것은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이 서유럽에서의 혁명으로 확산되기 위해서 이고, 특히 독일 혁명을 위해서 였다. 초기 볼셰비키 이데올로기는 폴란드는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다리이고, 이 다리를 건너서 붉은 군대가 독일에서 맑스주의를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8-1920년의 독일은 정치적 혼란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1920년 7월, 붉은 군대가 폴란드 바르샤바 근처까지 진격했을때, 붉은 군대를 통한 독일 해방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최악의 반동주의자와 왕당파를 포함한, 모든 독일인들이 볼셰비키가 자신들의 구세자라고 선언할 때가 왔다."


레닌과 그의 측근들은 만약 혁명이 세계적이지 않다면, 러시아 혁명은 끝장날 것이라 전망했다. 러시아에서의 논쟁은 폴란드 다리를 건너야 하는지의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건너는가가 논점이었다. 레닌의 세계혁명론에 따르면, 폴란드로의 붉은 군대의 진격이 유럽에게 붉은 군대의 총검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볼셰비키 혁명을 수출을 위한 첫번째 시도가 될 것이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우리는 서부전선을 준비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모든 전력을 다해야 한다. 새로운 구호가 제창되어야 한다. 폴란드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라."




덧글

  • 행인1 2012/11/21 17:31 # 답글

    레닌과 볼세비키 지도부는 정말 폴란드를 돌파해서 (한창 난리 중인)독일에 혁명을 수출할 의도였을까요? 정말이라면 실로 놀라운 스케일이라는 말 밖에는...;;;
  • 파리13구 2012/11/21 17:49 #

    레닌은 혁명을 수출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
  • K I T V S 2012/11/21 19:14 # 답글

    독립한지 얼마 안된 폴스카를 다시 멸망시키려는 레닌이 잘못한 거였나..
    그것을 역으로 반격해서 라씨야로부터 영토를 획득한 피우스트스키가 나쁜 놈이었나..
    20세기 폴란드의 지도변화를 보면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쫌 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영토도 꽤 컸던게 폴스카니... 충분히 힘을 기를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 파리13구 2012/11/21 19:58 #

    네, 여러가지로 생각할 것을 던져주는 문제입니다.
  • 셔먼 2012/11/22 00:35 # 답글

    피우수트스키 치하의 폴란드는 하도 사고뭉치인지라, 일부 프랑스군이 감시를 위해서 거기에 주둔하기까지 했지요. 아이러니한 건 폴란드 주둔군에 미하일 투하쳅스키의 친구였던 샤를 드골도 끼어있었다는 겁니다.;
  • 파리13구 2012/11/22 09:52 #

    드골은 피우수트스키를 흠모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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