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파리 강화 회의에서 배제된 이유는?" 유럽외교사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와 서양"

[제1차세계대전]
[파리 강화 회의]
[베르사유 체제]


파리 강화 회의(Paris Peace Conference)는 1919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이 연합국과 동맹국 간의 평화 조약을 협의하기 위해 개최한 국제 회의이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러시아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러시아 내전을 종식시키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서 러시아 대표를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시키기를 원했다.


영국의 로이드 조지도 이 견해에 동의했다. 영국 총리는 러시아 같이 영토가 넓은 나라가 평화회담에 제외된 상황에서 세계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클레망소가 이에 반대했다. 그는 러시아 대표단의 회의 참석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에게 세계대전이란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전쟁이었고, 이것만이 주요 문제였다. 특히, 그에게 러시아는 전쟁 중에 프랑스를 배신한 국가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는 평화회의에서 배제되어야만 했다. 러시아 문제 관련 클레망소의 주요 관심사는 볼셰비즘을 신질서에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볼셰비즘은 적응이 아닌 타도의 대상이었고, 아니면 소련을 둘러싼 차단지대 a quarantine zone 가 형성되어야만 했다. 클레망소는 볼셰비키 대표단의 파리 초청에 완강히 반대했고, 만약 초청이 이루어진다면, 그는 파리 강화회의에서 철수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러시아가 파리 강화 회의에서 배제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덧글

  • K I T V S 2012/11/19 12:43 # 답글

    만약 프랑스가 러시아를 잘 대해줘서 회의에 참석시켰다면... 유럽이 좀 더 평화스러워졌을지... 아니면 더 빨리 유럽전체가 빨갱이 소굴이 되었을지... 궁금해지네요..;;
  • 파리13구 2012/11/19 12:48 #

    프랑스는 불과 10여년 이후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 소련을 끌어들이자는데 앞장서는 나라가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때 프랑스의 친소적인 태도를 견제하는 것은 영국이었습니다.
  • 셔먼 2012/11/19 18:59 # 답글

    그래서 한때는 피총통의 폴란드를 끌어들였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소련으로 금새 노선을 갈아탔죠. 프랑스인들 변덕은 알아줘야 합니다.;
  • 파리13구 2012/11/19 22:39 #

    네, 프랑스 외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 골든 리트리버 2012/11/24 11:54 # 답글

    당시 프랑스인 160만 명이 러시아에 투자한 150억 프랑, 전체 프랑스 국부의 5%가 볼셰비키에게 강탈당한 상태이니 프랑스 입장에선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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