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한 스탈린의 분노는?" 유럽외교사

"히틀러는 세계정복을 계획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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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대한 스탈린의 분노는?"


1939년 초, 히틀러의 노골적인 동유럽 침략에도 불구하고 영불이 유화정책을 고집하자, 스탈린 및 소련지도부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을 소련과의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는것이 아닌가 두려워했다. 스탈린은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이 히틀러의 제3제국과 적극적인 타협의지를 가진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자본주의 열강과 파시스트 국가들이 소련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해서 손을 잡을수도 있다고 우려했고, 히틀러의 독일이 영국의 지원 혹은 묵인하에 소련을 침공할수도 있다고 보았다.


모스크바에서 제18차 소련공산당 전당대회가 개최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1939년 3월 10일-3월 21일)


제18차 대회는 대숙청 이후 소련 지도부가 "정화된" 상태에서 열린 최초의 전당대회였다.


3월 10일의 연설에서 스탈린은 소련 외교정책의 주요 과제들을 정리해서 보고했고, 특히 서양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실망을 표현했고, 소련 외무장관 막심 리트리노프가 옹호했던 집단안보 정책이 실패했음을 선언했다. 이 연설에서, 스탈린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독일의 동진 the Germans to go Eastwards 을 장려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이런 식으로 소련을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라고 경고했다.

3월 23일, 나치 독일이 리투아니아의 메멜을 양도받았다.

4월 4일, 리트비노프 외무장관은 이반 마이스키 Ivan Maisky 런던 주재 소련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훈령했다 :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북동쪽 방향으로 침략하도록 사주하고 있다. 체임벌린은 소련이 독일의 발트해 지역 점령에 저항하기를 기대하고 있고, 이것이 그가 원해왔던 소련-독일의 충돌로 귀결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당시 소련은 독일이 레닌그라드를 목표로 발트해 국가들을 경유해서 침공해 오는 것에 대해서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고 한다.


5월 3일, 집단안보를 기초로 한 서양과의 외교적 협력을 중시했던 막심 리트비노프가 경질되고, 몰로토프가 신임 소련 외무장관에 임명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렇게 나치 독일과의 당분간의 타협을 목표로한, 독소불가침조약을 위한 모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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