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밴시터트 외무차관이 유화정책에 반대한 이유는?" 유럽외교사

"히틀러는 세계정복을 계획했을까?"

[제2차세계대전]
[영국외교][유화정책]


"영국 밴시터트 외무차관이 유화정책에 반대한 이유는?"


영어 위키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로버트 밴시터트 Robert Vansittart (1881-1957)는 전간기와 제2차세계대전 동안 영국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그는 1928-1930 영국총리 비서실장, 1930-1938 영국 외무부 차관 그리고 영국정부의 외교보좌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유화정책 반대자로 명성이 있고, 독일에 대한 강경노선을 주장했다.


밴시터트는 처음부터 히틀러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히틀러의 모든 발언이 대외 소비용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그 필요성을 충분히 강하게 느끼게 되자마자 또 한번의 세계대전이 시작될 것이라 생각했다. 밴시터트는 독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베르사유 조약 수정에 동의했지만, 히틀러가 권자에 있을 동안의 수정에는 반대했다. 밴시터트의 견해에 따르면, 영국은 독일에 대한 단호한 정책을 실행해야 하고, 독일에 대항한 프랑스와 소련과의 동맹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밴시터트는 또한 재군비를 재촉했다.


1936년 여름, 밴시터트는 독일을 방문했고, 독일을 외교적으로 포위하기 위한 프랑스 바르투의 구상이 끝장났다는 것을 절감했고, 영국이 당장 독일과의 협상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를 희생시켜, 히틀러의 영토에 대한 굶주림을 달래는 것은 비도적인 것이라 보았고, 프랑스-러시아 동맹은 협상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히틀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독일의 아프리카 진출을 용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히틀러가 독일의 중부 그리고 남동부 유럽으로의 팽창을 은폐하기 위해서, 볼셰비키의 위협이라는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밴시터트는 힘의 정치학이라는 관점에서 사고했다. 그는 히틀러가 괴벨스와 티르피츠의 주장처럼, 영국을 숙적으로 간주하게 될 지 아니면 리벤트로프 처럼 동유럽에서의 팽창을 위해 영국에 대한 유화를 주장하게 될 지 여부를 결론내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밴시터트는 둘 중 어떤 경우이든지간에, 영국의 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독일과의 경제적 협상 그리고 독일의 식민지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한편 밴시터트는 무솔리니를 히틀러로부터 이간질시키기를 원했다. 그는 대영제국을 악몽이라고 간주했고, 차라리 유럽대륙이 영국 국익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어떤 협상으로 유럽에서의 영국의 이익을 지켜야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같은 그의 고민에는 독일의 의도에 대한 그의 공포가 있었고, 만약 독일이 동진한다면, 독일은 발트해,아드리아해,그리고 흑해에서 군사 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1930년대 영국 외무부에서, 밴시터트는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에 반대한 주요 인물이었다. 1930년대말, 그는 외무부 언론담당 국장, 리퍼 Reginald Leeper와 함께, 유화정책에 반대하는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지의 국제면 편집인, 레녹스 Victor Gordon Lennox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이같은 정보 누설 활동으로, 그는 당시 외무부 고위층과 갈등을 겪게 되었고, 1938년에 외무차관직에서 경질되었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 영국 정부의 외교 보좌관 "Chief Diplomatic Adviser to His Majesty's Government" 이라는 자리가 신설되었고, 그는 1941년까지 이 직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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