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세계정복을 계획했을까?" 유럽외교사

[제2차세계대전]
[제2차세계대전의 기원]
[히틀러]


"히틀러는 세계정복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나?"
-안드레아스 힐그루버의 단계적 계획 이론


안드레아스 힐그루버 Andreas Hillgruber 1925-1989 는 독일의 보수주의 역사학자였다. 그는 군사,외교사의 대가였다. 히틀러의 대외정책에 대해서, 힐그루버는 단계적 계획이론 The Stufenplan concept 을 주장했다.


단계적 계획이론
The Stufenplan concept


힐그루버는 제3제국의 대외정책과 관련, 히틀러가 단계적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즉 히틀러가 사전 종합계획을 가지고 대외정책을 단계적으로 주의깊고 신중하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1단계- 1918년 패전 이후의 제국의 힘을 강대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2단계- 중유럽에서의 패권 장악을 통한 독일 국력의 신장
3단계- 소련을 패배시켜, 동쪽에서 레벤스라움(생존공간)을 획득,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다.
4단계- 독일민족의 위대한 독일 제국이 해외에서 세계제국 건설에 나선다.


힐그루버에 따르면, 히틀러는 동유럽 정복과 대량학살을 위한 단계적 계획 Stufenplan (stage-by-stage plan)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 정복도 계획했다. 1960-1970년대에 힐그루버는 클라우스 힐데브란트 Klaus Hildebrand, 군터 몰트만 Gunter Moltman,헨케 Henke와 함께, 히틀러가 전쟁동안 무계획적이 아니라, 다름 아닌 바로 세계 정복을 목표로, 일관성있고 정교하고 세밀한 대외정책을 수립,실천했다고 주장한 독일 역사가들 중 한명이었다. 힐구르버는 히틀러의 대외정책이 지리적으로는 전세계로 확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반유대주의, 사회적 다윈주의에 기반한 것이었고, 그의 계획은 전인류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주장했다. 힐그루버에 따르면, 소련 정복과 영국과의 동맹체결 시도는 히틀러의 단계별 계획의 가장 중요한 단계들이었다. 힐그루버는 히틀러가 그의 계획을 실현하는데 매우 융통성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1920년대에 그가 만든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는 것이다. 힐그루버는 1939년의 세계대전은 히틀러가 도발한 것이었지만, 폴란드 침공은 히틀러의 사전계획 시간표 상으로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기 위해서, 1939년 1월의 히틀러의 Z 계획과 대서양에서의 주요 거점 장악 및 아프리카 대부분의 정복을 위한 히틀러의 1940년 6월 계획의 존재를 강조했고, 히틀러가 미국과의 궁극적인 충돌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의 Z 계획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http://kk1234ang.egloos.com/2900872]


이 이론에 따르면, 히틀러의 1단계 계획은 독일 군사력의 증강이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통적 대외정책 목표와 유사하다. 2단계는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프랑스 같은 국가들을 격파하기 위한 지역 전쟁이었다. 3단계는 소련을 없애기 위한 전쟁이고, 히틀러가 유대-볼셰비즘으로 간주하는 체제를 끝장내기 위한 것이다. 4단계는 위대한 독일제국이 대영제국과 일본과의 동맹을 맺어,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힐그루버는 소련 정복 이후에 히틀러는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을 정복, 대규모 해군을 육성, 일본 및 대영제국과의 동맹을 통해, 세계지배를 위한 미국과의 대륙 전쟁을 도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힐그루버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러시아 정복을 기반으로한 유럽 대륙 제국의 탄생 이후, 독일 제국 팽창의 제2단계는 중앙 아프리카에서의 추가 영토 획득과 대서양과 인도양에서의 해상활동을 위한 해군 지원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일본과 가능하다면 영국과 동맹을 맺은 독일은 우선 미국을 고립시키고, 미국을 서반구에 가두려고 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서, 대륙 전쟁이 발발할 것이고, 이 전쟁에서 독일민족의 독일 제국은 세계 지배를 놓고 미국과 싸울 예정이었다."


"이같은 원대한 계획 그리고 특히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정복 계획은 확실히 한 인물의 개인적인 계획이었다. 하지만 베르사유 조약의 수정과 위대한 독일의 탄생 같은 계획은 옛 독일의 지도자들의 목표와 일치하는 것이었고, 결코 패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대부분의 독일 국민들의 환상에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힐그루버는 독일의 전격전 전략이 경제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고, 단계별 계획의 초기 단계에서, 독일이 장기전을 위한 충분한 자원을 소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라 주장했고, 따라서, 군사적 양보다는 질에 기반한 것이었고, 독일의 경제 능력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용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히틀러가 미국과의 대결을 최종 단계로까지 연기한 이유는 바로 경제적 고려에 근거한 것이었고, 대부분의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정복해서, 충분한 레벤스라움을 확보한 독일만이 미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에 필적할 수 있으며, 경제 봉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유럽만을 장악하기를 원했다고 주장했던 휴 트러버-로퍼 Hugh Trevor-Roper와 같은 대륙주의자와 히틀러는 세계정복을 원했다는 세계주의자들간의 논쟁에서, 힐구르버는 확실하게 후자에 속한다. 세계주의파 역사가인 힐그루버는 히틀러가 항상 소련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1940년 가을 바르바로사에 대한 대안으로, 레더 제독이 주장한 지중해 계획에 대한 히틀러의 관심은 기껏해야 반신반의였고, 1940년 7월부터 히틀러는 소련과의 충돌 결심을 확고히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볼프강 미칼카 Wolfgang Michalka 같은 역사가들은 1940년말 반-영국 유라시아 대륙 동맹을 결성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구상에는 소련도 포함되어 있었고, 히틀러는 지중해 계획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히틀러가 1940년 12월 18일 바르바로사 작전을 승인한 것은, 히틀러가 레더의 지중해 전략에 대한 관심을 최종적으로 잃은 다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역사가 칼리스 Aristotle Kallis 도 1940년말 히틀러는 레더의 지중해 계획에 대해서 진지했다고 주장했고, 그는 지중해 계획을 영국을 먼저 피배시키기면서, 바르바로사 작전을 위한  사전 계획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힐그루버는 히틀러를 매우 명확한 계획을 가진 광신적 이데올로기주의자로 간주했고, 히틀러가 권력 장악 이외의 다른 현실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무계획적인 기회주의자였다고 주장한 영국 역사가 테일러 A.J.P. Taylor, 앨런 블록 Alan Bullock을 비판했다. 뿐만아니라, 그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외교적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고 주장한 테일러의 해석을 체계적으로 반박했다. 힐그루버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전쟁에 대한 히틀러의 이데올로기적 믿음에 기반했고, 독일의 레벤스라움의 필요에 따른 침략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힐그루버에 따르면, 제2차세계대전은 2개의 전쟁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서양과 독일간의 일반적인 유럽 전쟁이었고, 이는 히틀러가 도발했지만, 실제로 원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전쟁은 히틀러가 도발했을 뿐만아니라 진정으로 원했던 전쟁으로 바로 독소전쟁이었고, 독일 국가사회주의와 소련 공산주의간의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전쟁이었고, 상대방을 인종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절멸시키기 위한 전면전이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히틀러의 대외정책은 완전히 비현실적이었고, 실현 불가능했다. 힐그루버는 독일이 해군,식민지 요구를 포기하는 대신, 영국이 전체 유럽을 독일의 영향권으로 인정해 줄 것이라 믿었던, 히틀러의 가정은 영국의 이익이 해군 및 식민지 문제에 한정되어 있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힐그루버는 영국은 세계의 강대국이자 동시에 유럽의 강대국이었고, 히틀러가 1920년대에 나의 투쟁에서 제안했던 세력 균형의 심각한 파괴를 절대로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했다.


1974년의 그의 논문 "히틀러의 세계정복 계획에서의 영국의 위치"에서 힐그루버는 나치 시대동안 독일의 외교정책은 10단계를 걸쳐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힐그루버는 초기 단계 동안,히틀러는 영국을 자신의 반소련 동맹 진영에 포함시키려 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1937년이 되면, 히틀러는 가능하면 영국과 더불어 혹은 영국을 배제한 팽창 정책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말이 되어, 영국이 자신의 제안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독일의 대외정책은 반-영국 노선으로 전환되었고, 1939년 1월의 영국 해군 타도를 위한 히틀러의 Z계획이 탄생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는 것이다.


힐그루버는 소련에 승리하기 이전에 미국에 선전포고하기로한 히틀러의 결정은 미국이 일본을 빠르게 제압할지도 모른다는 히틀러의 믿음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했고, 미국이 태평양과 유럽에서 양면전쟁을 수행할 동안 미국과 싸우는 편이 유리하다고 보았다고 한다. 또한 1941년 12월의 히틀러의 대미 선전포고는 최소한 1942년 여름까지는 독일이 소련을 제압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덧글

  • 천마 2012/11/05 14:43 # 삭제 답글

    힐그루버의 책을 아직 읽지 못해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근거를 들어 그와 같은 주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런 주장을 했으며 다른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논파당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파리13구님이 정리하신 글로 미루어보니 그의 주장이 좀 황당하드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스탈린이 독일을 먼저 침공하려고 공세적으로 포진하다가 독일에게 선공당해 격파당했다던 주장이 생각나는군요.

    이 주장도 힐그루버의 주장과 유사하게 스탈린의 (정치적)발언이나 병기개발계획등을 근거로 들면서 독일 우파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었지만 역사학자들에 의해 부정된 것으로 압니다.

    히틀러가 레벤스리움 발언을 했다고 해서 그가 정말 세계정복을 꿈꾸며 정교한 계획을 세웠다는 근거는 못됩니다. 영국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한 건 프랑스전 이후였고 그 전엔 영/프를 상대로 공갈에 가까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었죠.

    사실 제가 힐그루버의 주장에 회의적인건 제가 히틀러에 대해 가진 인상이 치밀한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눈앞에 나타난 상황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면서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재빨리 붙잡을 줄 아는 인물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빨리 그의 책을 읽어야할텐데 좀처럼 손이 안가네요.^^ 사놓고 아직 못 읽은 다른 책도 많으니...^^;;;
  • 파리13구 2012/11/05 14:48 #

    네, 저도 역사가 테일러의 히틀러관, 즉흥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히틀러가 입맛에 더 맞습니다. ^^

    국제정치와 전쟁전략은 나중에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
  • 지나가던과객 2012/11/06 00:43 # 삭제 답글

    전쟁 시작한게 자기 생각외로 잘되서 이참에 유럽의 지배자가 되보자는 생각이 든게 아닐까하네요.
  • 파리13구 2012/11/06 09:42 #

    힐그루버는 전쟁 시작 전에 이같은 구상을 이미 마쳤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 셔먼 2012/11/06 01:36 # 답글

    1939년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기는 했지만 코카서스 지역의 유전이나 북아프리카 전선으로의 교두보 확보를 위해서는 소련을 침공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이라 봅니다.
  • 파리13구 2012/11/06 09:43 #

    네, 그점은 스탈린도 동의했을 것입니다.
  • 깜딩이 2014/03/04 14:55 # 삭제 답글

    만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 했을때 서방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면...프랑스와 불가침 조약 같은 것을 맺을 수 있었다면.....히틀러는 후에 동유럽으로 진격 했을지라도 프랑스 국경은 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난 히틀러의 세계정복 구상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영국이 세계정복의 구상이 있어서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했는가?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려는 계획아래 연합군과 전쟁을 시작했었나? 그건 아니다.

    단순하다. 히틀러는 소련 우크라이나등 동유럽에 제국의 식민지를 세우길 원했다. 서방은 이것이 실패하기를 바랬고 미래의 잠재적 경쟁국인 독일이 침몰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2차대전의 원인은 1차대전의 원인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그 연장선에 있다. 즉 신흥 강국 독일에게 스패이스를 주지 말자는 것이다. 보불전쟁에서 늑대를 잡자던 영국의 중립이 호랑이 새끼를 호랑이로 키웠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자는 것이 당시 서방세계의 심정이었으리라.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사회주의 이념이 국시인 독일에게 유태인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봉쇠 시키고 그들을 적대적으로 만들어 독일국내 문제의 압력 수위를 높힌것도 서방의 대독 정책중 하나가 아니었나? 이런 모든 행위는 잠재적 경쟁국 독일의 견제에서 온 것이다. 이 모든 일의 결과가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이라는 파국을 또 불러 온것이지 한 영웅적으로 미친 인간의 판타지적 계획의 실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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