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합병 직후, 영국의 상황인식? 유럽외교사

전쟁에 대한 체임벌린의 인식 변화...

[제2차 세계대전]
[오스트리아 합병]
[유화정책]


1938년 3월 12일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합병은 오스트리아에서 충분히 환영받았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에 이에 무력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영국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1938년 3월 12일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직후 그의 누이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다.


"독일이 알고있는 유일한 주장이 힘 뿐이라는 것이 이제 완전히 명확해졌고, 집단안보가 그것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의 지원을 받아 굉장한 힘을 가진 의미있는 세력임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집단안보가 이같은 사건을 막기위한 어떠한 전망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해졌다."


-네빌 체임벌린

1938년 3월 13일

동생 힐다 체임벌린 Hilda Chamberlain 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독일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당시 핼리팩스 외무장관도 동의한 생각이었다.


"제3제국과의 전쟁이 앞으로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외교의 목표란 전쟁을 지연시키는 것이고, 그 전쟁터를 고르는 것이고, 방어수단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핼리팩스

영국 외무장관

1938년 4월 노조 지도자들에 행한 발언


한편,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영국 외무부는 영국 전략에 균열이 있음을 인정했다.


"독일은 명백하게 전면전 혹은 장기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도 프랑스도 독일이 중부 유럽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영국 참모본부 보고서는 영국이 세계대전을 치를 준비가 되지 않았고, 체코슬로바키아 위기로부터 세계대전 발발의 위험이 있고, 특히 독일의 공중 공격 가능성이 있다.


국방장관 인스킵 Thomas Inskip은 독일은 단기전을 치를 수 있지만, 영국은 공중 공격 같은 단기전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체임벌린 총리는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체코슬로바키아 방위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결론내렸다. 체코 방어는 나라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장기전을 치르겠다는 약속에 다름아니고, 영국이 아직 준비가 안된 공중 공격과 서부 유럽에서의 단기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판단에 의거, 체임벌린은 체코에 대해서 보장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외교만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고, 공군력에서의 영국과 독일의 균형은 일년 혹은 2년뒤에 더 호전될 것이라 전망되었다. 

따라서 유화정책의 목표란 장기전을 위한 영국의 재무장이 완료되어, 영국이 독일과의 전쟁준비를 완료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체코슬로바키아 문제에 대해서 개입하기 위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했고, 이 문제는 양보를 바탕으로한 외교로 풀면서, 시간을 벌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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