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히틀러에 대한 예방전쟁을 벌여야 했을까?"

"예방전쟁과 선제공격의 차이는?"

[제2차세계대전]
[예방전쟁]


"언제 히틀러에 대한 예방전쟁을 벌여야 했을까?"

이론적으로 보면, 예방전쟁의 적기란 전쟁 도발국의 무력이 대상국과 비등하거나 약간의 우위를 보일때고, 더 늦춘다면, 양국간의 힘의 균형이 대상국에게 현저하게 유리하게 되는 상황이다.

역사가들 사이에서, 언제 독일의 군사력이 프랑스와 영국을 능가했는지와 만약 영불이 1936년 혹은 1938년에 예방전쟁을 벌였다면 독일에 승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논쟁이 있어왔다.


몇몇 역사가들은 독일과의 군사력이 비등했던 뮌헨협정 직전에 프랑스가 독일에 대한 예방전쟁을 벌이는 것이 1939-1940년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더 좋았을 것이라 가정했다. 가령 앤서니 애담스웨이트 Anthony Adamthwaite는 1938년 9월이 프랑스가 독일과 대등하거나 더 우세한 조건에서 싸울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고 주장했다. Anthony Adamthwaite, The Making of the Second World War (London: George, Allen & Unwin, 1977) 머래이와 메이도 같은 입장이다. Williamson Murray ,The Change in the European Balance of Power, 1938–1939: The Path to Rui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4) Ernest R. May ,Strange Victory: Hitler’s Conquest of France (New York:Hill and Wang, 2000).


다른 역사가들은 1938년 3월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독불간의 힘의 관계가 독일 우위로 역전되었다고 주장한다. Jean-Baptiste Duroselle,France and the Nazi Threat: The Collapse of French Diplomacy, 1932–1939 (New York: Enigma Books,2004)


일부 역사가들은 1936년 3월의 라인란트 재무장이 전환점이었다고 주장한다. 영 Young 은 1936년에 독일군은 확실히 프랑스군에 대해서 질적인 우위를 가지게 되었고, 독일 공군은 안정적인 우세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Young, France and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하지만 주커는 영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독일군은 1936년 3월에 이미 프랑스군을 능가했다고 주장했다. Schuker, “France and the Remilitarization of the Rhineland,” 스웰러는 이에 동의하면서, 군사력,경제력 그리고 인구라는 관점에서, 독일은 이미 1934년에 영국과 프랑스를 각각 능가했고, 이 힘의 격차는 매년 더욱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Randall L. Schweller, Deadly Imbalances: Tripolarity and Hitler’s Strategy of World Conques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역사가 립스맨과 레비에 따르면,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주커와 스웰러의 견해가, 1930년대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들의 세력 균형 인식을 반영한다고 한다. 프랑스와 특히 영국 지도자들은 독일이 1935년의 징병제 재도입으로 프랑스와 영국을 합친 힘을 능가하게 되었다고 인식했고, 독일의 대규모 공군과 함께 히틀러의 30만대군을 프랑스와 영국이 감당하기 역부족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NORRIN M. RIPSMAN and JACK S. LEVY, The Preventive War that Never Happened: Britain, France, and the Rise of Germany in the 1930s




덧글

  • 일화 2012/10/26 14:12 # 답글

    사후적 지혜의 문제이긴 합니다만, 히틀러의 국내지지 같은 요소를 생각하는 경우 시작부터 싹을 자를 수 있도록 라인란트 재점령이나 재군비선언 당시 선전포고 후 무력개입 등 강경책을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게 아니라 1차대전과 같은 전면/총력전을 각오하고 개전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폴란드 합병도 넘기고 40년이나 41년에 개전하는 것이 나아보이고 말이죠.
  • 파리13구 2012/10/26 14:15 #

    감사합니다. ^^
  • 대공 2012/10/26 16:29 # 답글

    가장 명분도 있을때는 체코때 합병불가 시켜서 체코에 선전포고하고 산악지역에서 고전할 때 뒤통수 터는게 정답으로 보입니다만....
    또 앉은뱅이질 하다 시간 날려 먹는다는데 한표 겁니다
  • 파리13구 2012/10/26 16:40 #

    ^^
  • 누군가의친구 2012/10/27 00:39 # 답글

    독일이 폴란드 침공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를 받을 당시 히틀러의 심정을 본다면 사실 좋은 호기는 모두 놓친거 아닌가 합니다. 히틀러의 계속된 모험에 대해 단호한 행동을 취하지 못한게 결국 화근이었죠.
  • 파리13구 2012/10/27 00:41 #

    그렇습니다.

    그리고 왜 영불이 히틀러에 대한 예방전쟁에 나서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셔먼 2012/10/27 03:15 # 답글

    무엇보다도 당시 프랑스의 귀중한 동맹국이었던 영국이 대응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예방전쟁이 불가능하게 된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2/10/27 03:47 #

    영국의 대독 유화정책은 로이드 조지가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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