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군의 문제점은?" 유럽외교사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여러 민족들 가운데 애국적 단결의 공동 전선을 처음으로 파괴한 것은 바로 체코인이었다. 그들은 마지 못해 동원소집에 응했지만, 전쟁에 대해서 전혀 정열을 느끼지 못했다.


1915년 4월, 프라하에서 징병된 18연대가 전투를 포기하고 러시아군에 집단투항했다.


하지만 이 투항이 체코인 병사들의 전쟁에 대한 단순한 혐오감의 산물이었는지 아니면 오스트리아 지배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 산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하셰크의 소설 <병사 슈베이크>에 잘 묘사되고 있다.


아무튼, 이후에도 체코인 병사들의 탈영은 계속되었고, 마지막까지 러시아군과 맞서 싸운 체코 군단은 불과 300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프라하나 그 밖의 체코 도시들에서 문학 혹은 기타 분야에서의 오스트리아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최후까지 계속된 체코인의 반항은 적극적 저항 혹은 반란이기 보다는 소극적 비협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출처- 제임스 졸, 현대 유럽정치사회사 1권, 290 페이지 중에서...


- 이같은 합스부르크 제국 내의 민족문제를 보면, 왜 비스마르크가 대독일주의가 아니라 소독일주의를 주장했는지 알 수 있다.
- 이런 관점에서, 이미 민족문제가 심각한 상태에서 합스부르크가 자신의 제국에 세르비아를 추가하기 위해 시작한 제1차세계대전은 모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르비아의 추가로 제국이 강화되기 보다는 민족문제의 혼란만 가중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덧글

  • 비스마르크 2012/10/23 23:38 # 삭제 답글

    그래서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어도 오스트리아의 국내정치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은 거군요..비스옹의 통찰력은..
  • 파리13구 2012/10/24 10:42 #

    명불허전 입니다..^^
  • 셔먼 2012/10/27 03:43 # 답글

    왜 체코인들이 오스트리아와의 연대를 거부했나요?
  • 파리13구 2012/10/27 03:51 #

    민족 감정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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