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 유럽 동맹체제의 한계는?" 유럽외교사

"러일전쟁과 영불협상?"

[제1차 세계대전]


전쟁전 유럽 동맹체제의 한계는?


미국의 윌슨의 시각에서 보면, 제1차세계대전은 프랑스,러시아,영국의 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의 동맹국측 양대진영의 무력 충돌의 결과물이었고, 이같은 동맹 체제의 존재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윌슨은 동맹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국제연맹을 중심으로 한 집단안보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쟁이전의 동맹체제가 항상 제대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전쟁 혹은 전쟁위기로 동맹이 균열되기도 했다.

제임스 졸에 따르면, 1914년 이전의 유럽 동맹체제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1914년 이전의 동맹체제는 동맹 당사국들의 전략적 정치적 필요가 일치될 때에만 효력을 발휘했고, 공동된 이해가 없을때는 별다른 효력을 가지지 못했다.


노불동맹도 양국이 모두 독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을때에만 효력이 있었고,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898년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수단의 파쇼다에서 충돌했던 파쇼다사건에서, 러시아는 아프리카에서의 프랑스의 이익을 지지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극동에서의 러일전쟁 동안에, 프랑스도 동맹국 러시아와 새롭게 친선관계를 맺은 영국 사이에서 방황했고, 러시아를 전면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독일-오스트리아 동맹의 의의도 중부 동부 유럽에서 군사적 정치적 세력균형의 유지를 위해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독일의 확신이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있었다. 특히 1907년 영러협상이 체결되면서, 독일은 외교적 포위의 공포에 사로잡혔고, 이때부터 독일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해야 한다는 동맹적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독일의 유일한 주요 동맹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독일의 지원이야말로 발칸 반도로의 러시아 확장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남 슬라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믿었다.

참고- 제임스 졸, 현대 유럽정치사회사 1권, 26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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