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보부는 나치의 위협을 어떻게 파악했나?" 유럽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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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외교][프랑스정보부]


"프랑스 정보부는 나치 독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나?"

- "나치독일의 위협과 프랑스 정보부의 대응!"

피터 잭슨, 프랑스와 나치의 위협 : 첩보와 정책 결정, 1933-1939
Peter Jackson.France and the Nazi Menace: Intelligence and Policy Making, 1933-1939.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다음은 피터 잭슨의 책에 대한 윌리엄 어빈 William D. Irvine 의 서평을 정리한 것이다.


1940년 5-6월의 프랑스의 엄청난 군사적 패배 이후, 프랑스 몰락의 기원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집중되어 왔다.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프랑스의 기묘한 패배를 프랑스 제3공화국의 심각한 타락 탓으로 돌린다. 다른 학자들은 전쟁전의 프랑스를 더욱 강하게 보고 있고, 1940년 봄의 사건을 필연적이거나 운명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 논쟁에서 핵심적인 쟁점들 중의 하나는 전쟁이전 나치독일에 관한 프랑스 정보당국의 정보의 질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 정보부는 히틀러의 장기적인 목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고, 독일군의 잠재력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가? 프랑스 정책결정자들은 정보부가 파악한 정보를 어떻게 활용했는가? 이것이 바로 역사가 피터 잭슨의 질문이다.


잭슨의 대부분의 설명은 프랑스 정보당국이 독일에서의 프랑스 첩보활동을 통해 파악한 정보를 어떻게 다루었는지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첩보활동을 통한 1차정보는 어떻게 해석되고 가공되느냐에 따라 그 가치여부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프랑스 정보 분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기존 가정하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우선, 독일의 민족성이 호전적이고, 매우 효율적이라는 가정이다. 다른 하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이러한 가정들이 실제로 정보 당국의 작업에서 매우 잘 적용되었다고 한다. 1933년이후 프랑스 정보부의 독일의 장기적인 외교적,군사적 목표에 대한 추정적 해석은 매우 정확했다. 이는 달라디에와 같은 정치인과 프랑수아 퐁세같은 외교관의 해석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었고, 달리디에와 퐁세는 히틀러의 의도가 슈트레제만 같은 그의 전임자들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하지만 프랑스 정보부는 독일의 즉각적인 군사적 잠재력을 파악하는데는 덜 성공적이었다. 분석가들은 독일의 공식적인 군사작전은 대체로 정확하게 파악했지만, 전투 준비가 된 사단과 현대 무기가 결여된 명목상의 부대를 구분하는데 실패했다. 1939년까지, 독일의 효율성이라는 가정에 매몰된, 프랑스 정보부는 독일의 재군비에 심각한 장애물이 이었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했고, 특히 독일의 자원과 노동력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결과, 현대식 독일 전투기 수에 대한 프랑스의 추정은 10배 정도까지 차이가 났다.


어떻게 분석되든지 간에, 첩보 정보는 그것을 군사,정치 당국자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마련이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의 적대적 의도와 군사적 능력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좌파 정부는 군축에 올인했고, 플랑댕과 라발,그리고 두메르그의 우파정부는 디플레이션 경제정책에 집중했기 때문에, 프랑스 재무장을 위한 여유가 없었다. 프랑스 정보부의 또하나의 약점은 그것이 군사 첩보부가 정보의 수집 및 해석을 독점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 결과, 정부는 정보 보고를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았고, 정부는 나치독일에 대한 프랑스 군정보부의 정보보고가 군비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 가공되었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물론 정부의 이같은 편견이 계속 틀린 것도 아니었다. 1934년 프랑스 군당국은 독일의 군사적 능력을 과장해서 보고했고, 이는 프랑스 재무장에 유리한 심리전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이같은 군전략이 효력을 발휘했고, 공군은 예산 증가를 위해서 정부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독일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단기적인 추정을 틀리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여전히 수공업적인 프랑스 항공 산업을 장기적으로 합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대신, 정부는 다목적 프랑스 신식 전투기들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저돌적으로 추진했지만, 대부분의 신식 전투기들은 이미 1940년 이전에 시대에 뒤쳐진 것이 되어 있었다. 특히 프랑스 정보부는 독일의 전략 폭격기 전력에만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에, 독일공군 전력 증강이 근접 지원 항공기에 집중한 사실을 파악하는데 실패했고, 이것이 1940년의 전격전에서 매우 치명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보부가 1930년대 나치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외교적 대응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잭슨에 따르면, 매우 미미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오스트리아 합병,뮌헨 위기,1939년 3월 15일의 체코 점령 이전에 독일 정부의 의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았지만, 이것이 싸우지 않겠다는 프랑스의 외교적 의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싸우지않겠다는 프랑스의 외교적 의지에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 정보당국이 독일의 당시 전력을 지나치게 높게 추정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1938년 9월의 뮌헨협정과 1939년 3월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사이에 프랑스 외교의 입장은 더욱 확고해졌다. 1939년, 독일의 재군비에 대한 정보당국의 파악이 매우 더 현실적이 되었고, 독일의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도 더욱 정확해졌다. 정부와 군부는 오래전부터 히틀러에 대한 유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온 정보당국의 정보 보고를 더 잘 수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잭슨에 따르면, 독일에 대한 정부 당국의 결심이 확고해짐에 따라, 양국의 군사적 균형에 대한 정보 당국의 보고는 덜 염세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 정부의 대독 견제 의지가 올라가면서, 프랑스 정보당국의 독일 무력에 대한 과장된 추정이 시정된 현상은 정보부와 정부간의 정보의 "생산자/소비자"의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전자는 후자가 듣기에 좋은 것을 제공해 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잭슨에 따르면, 프랑스의 정치 및 정보 당국은 1939년에 덜 염세적인 이유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영국은 더 믿을만한 동맹이 되었고, 경제는 호전되었고, 프랑스의 군수 생산은 적과 유사하거나 적을 뛰어넘었다. 책의 마지막에서, 잭슨은 1939년의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확신에 차있고, 외교적으로 확고했고, 군사적으로 회복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이 남게 된다. 1940년 프랑스의 굴욕적인 패배의 원인은 무엇인가?



-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1939년 이전, 프랑스 정부가 나치 독일에 대한 무력 견제를 기피할 때, 프랑스 정보당국은 나치 독일의 무력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그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면,

1939년 이후 프랑스 정부가 나치 독일에 대한 무력 견제를 각오하게 되자, 프랑스 정보당국은 나치 독일의 무력에 대한 상대적인 현실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었고, 나치 독일과 무력으로 싸울만 하다는 믿음을 제공해 준 것으로 보인다.




덧글

  • 일화 2012/10/16 16:35 # 답글

    정보분석이 외교방침에 영향을 주었다기 보다는 외교방침이 정보분석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좀더 사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이야기로군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파리13구 2012/10/16 16:37 #

    감사합니다. ^^
  • 엑스트라 1 2012/10/16 19:51 # 답글

    군이 가상적국에 대해 평시에는 과대평가하다가 전쟁직전엔 "싸워볼만 하다"고 오판을 내리는건 상당히 흔한 일인 것 같더군요. 1, 2차 세계대전의 독일도 그랬고, 일본도 그러한 오판을 내렸죠.
  • 파리13구 2012/10/17 08:57 #

    그렇군요...
  • 행인1 2012/10/16 23:11 # 답글

    의도는 정확하게 파악했지만 전력은 몇배나 오판했다니 이 무슨 낭패인지...
  • 파리13구 2012/10/17 08:57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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