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프랑스 외교의 걸림돌은 폴란드!" 유럽외교사

오스트리아 돌프스 총리와 프랑스 외무장관의 회담 1934년

<루이 바르투 - 프랑스 외무장관 1934년>

루이 바르투
Louis Barthou


바르투는 가스통 두메르그 Gaston Doumergue 정권하에서 외무장관을 맡았다. (1934년 2월 9일-1934년 10월 9일)


바르투가 외무장관에 기용된 1934년초는 프랑스 국내외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우선 1934년 2월 6일 파리에서 극우파가 주도한 폭동으로 달라디에 총리가 실각한 국내의 정치적 불안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1933년 10월 독일이 군축회의와 국제연맹에서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히틀러의 위협이 가시화되었고, 1934년 1월에는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면서, 1920년대 이래 독일견제를 위한 프랑스의 동반자였던 폴란드가 동맹대열에서 이탈했던 것이다.


바르투가 영국,이탈리아,소련을 규합, 반-독일 전선을 구축하려고 노력한 것은 바로 이같은 히틀러의 위협에 대한 프랑스 외교의 대응 차원에서 였다.


바르투는 또한 동유럽판 로카르노 조약, 즉 독일,러시아,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발트해 국가들이 참여해서, 소련의 유럽쪽 국경을 프랑스가 보장하고, 독일의 동쪽 국경을 소련이 보장하는, 동유럽에서의 포괄적인 집단안보 조약을 맺으려 노력했다.


특히 바르투는 히틀러의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 소련을 끌어들이려 했고, 소련의 국제연맹 가입을 적극 주선했지만, 이는 폴란드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 즉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 프랑스가 소련에 접근하자, 전통적인 프랑스의 동맹국 폴란드가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으면서, 동유럽 외교질서에 대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1934년 4월 5일의 동아일보 기사, <동구의 정세변화로 프랑스 외교 대이상>은 바로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동유럽의 정세변화로 프랑스외교가 곤경


조선 경성- 동아일보
1934년 4월 5일


"독일이 군축회의에 복귀하리라는 전망이 제기되자, 그 경우에 프랑스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프랑스의 외무장관 바르투가 노구를 이끌로 외국 순방에 나섰다. 벨기에의 이만 외무장관과 회담한 결과, 언제나 변치않는 벨기에의 대-프랑스 우정에 감격, 지극히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했다. 바르샤바에서 피우수트스키 원수와 유제프 베크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바르투 외무장관이 어느 정도까지 옛 정을 따뜻하게 할지가 흥미로운 문제다.


피우수트스키 원수의 외교적 방향 급전환의 결과, 폴란드는 숙적인 러시아와 루마니아 등과 악수했을 뿐만아니라. 지난 15년동안 견원지간처럼 지내든 독일의 히틀러 외교와 타협해서 10년간의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프랑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부전선은 이제 완전히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지금까지 프랑스 대-독일 포위외교의 동부탐정 임무를 맡아온 폴란다가 급전환해서 독일과 악수한 것은 세계대전 이해 반석과 같다고 자랑하던 프랑스의 외교전선에 근본적인 이상이 발생한 셈이고, 프랑스 외무장관의 이번 바르샤바 방문으로 어떤 갱생책이 나올까 주목이 된다."


- 결과적으로 1934년 프랑스외교의 고민이란 다음과 같았다. 히틀러의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소련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이같은 프랑스-소련의 접근은 폴란드의 이탈로 나타났다. 뿐만아니라, 1934년 1월의 독일-폴란드 불가침조약으로 ,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간의 친선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폴란드는 독일의 팽창목표가 체코슬로바키아로 향할 것이라 보았고, 이 과정에서 폴란드는 어부지리를 챙길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1930년 동유럽 안보의 핵심적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소련 없이는 동유럽의 집단안보가 군사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소련이 가담한 집단안보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덧글

  • 천마 2012/10/15 16:00 # 삭제 답글

    확실히 당시 히틀러를 견제하자면 소련이 필요했습니다만 그 소련이 원래 반서방을 표방하는 국가다보니 좀 그랬죠. 소련도 독일을 경계해서 영국과 프랑스와 동맹맺을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가만 보면 이 시기의 독일이 외교적인 성과를 많이 올렸습니다. 영독해군협정을 맺고 재무장선언에 독폴불가침조약에다 나중에 독소불가침조약까지 영.프 외교관들은 대체 뭐하고있나 싶게 움직였죠.

    그랬는데 막상 2차대전이 터진 뒤로는 외교적인 면에서 거의 바보짓에 가까운 행동만 해댔으니 참^^;;;
  • 파리13구 2012/10/15 16:10 #

    저는 외무장관이 노이라트에서 리벤트로프로 교체된 1938년 2월이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
  • 셔먼 2012/10/16 01:54 # 답글

    처음엔 러시아, 루마니아와 손잡다가 나중에 곧바로 독일과 불가침 협상을 맺다니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군요.
  • 파리13구 2012/10/16 10:55 #

    베크 외무장관이 폴란드 외교정책을 친프랑스에서 독일과 소련간의 균형정책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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