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독일][히틀러]
[나치외교]
주목할 독일의 친영정책
조선 경성-동아일보 사설
1935년 5월 24일
히틀러의 지난 3월 16일의 폭탄선언[주1]이 있은 후로, 유럽 정국은 매우 혼란한 상태가 되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대전의 재개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스트레자 전선[주2] 이라던가 제네바 국제연맹 이사회에서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3국간의 보조가 일치하게 되어, 독일에 대한 문책결의까지 있게 되었고, 그 후의 형세를 보더라도, 프랑스와 소련 사이에 군사 원조조약[주3]이 성립되었고, 또한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 사이에 원조조약이 성립되었고, 최근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 항공협정이 성립되었다는 것은 독일포위망이 점차 강화되어 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독일로서는 이같은 시국에 직면, 자국의 힘만을 과신하고 나간다면, 또다시 과거의 세계대전에서와 같이 고립적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영국의 태도를 보면, 문제를 온건하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고, 프랑스와 소련이 바로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상황에서, 영국은 어디까지나 양극의 중간에서 그 적대관계를 조정해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번의 5월 21일의 히틀러 총통의 선언 [주4]은 확실히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만들었다. 히틀러는 자국의 주장을 힘있게 주장하면서도 영국의 호의를 사기에 급급한 의도를 그 선언 중에 명백하게 나타냈다. 독일은 해군에서 영국해군의 35% 비율을 요구하면서[주5], 영국정부와의 친선관계를 확립하고, 양국간의 전쟁을 장차 완전히 방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어느 나라던지 장래에 서로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할 나라는 없겠지만, 히틀러의 이번 선언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자체의 독일에 대한 태도도 프랑스에 비하면 퍽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고, 남아프리카연방( 南아프리카 聯邦, 영어: The Union of South Africa, 약칭 南阿聯邦 )같은 영국의 자치령에서는 더욱 독일에 대한 호의를 표하게 되어, 자신이 받은 옛 독일 식민지를 반환하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영국에서는 전체적으로 보아서 독일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따라서 영국에 대해서 호의를 표하는 것이 독일로서는 현명한 방책이라 할 수 있다. 불가침조약 체결 의도 있다고 말하고, 국제조약에 기인한다면, 해군의 함종과 군함의 총 톤수의 제한을 받기를 불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잠수함의 전량 폐기도 수락할 의사가 있음을 독일이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강하면서 유하게 영국에게 추파를 보내고 있으니, 이 방침대로 나아간다면 얼마동안 유럽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으로 과연 독일과 진정으로 친선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현재 독일이 주창하는 친영정책은 영불이간책 英佛離間策 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영국은 평화와 전쟁에 동시에 대비해야만 할 것이다.
- 나치 독일의 재군비 결정으로 인해서 조성된 유럽의 독일포위망을 깨기위한 히틀러의 외교적 노력을 보자면, 히틀러는 광신적인 전쟁광이기 보다는 비스마르크나 슈트레제만에 더 가깝다. 독일은 친영정책을 구사해서, 스트레자 전선을 균열시키고, 영국과 프랑스를 이간질시켰고, 이탈리아를 스트레자 전선에서 이탈시켰고, 결국 영국-독일 해군합의를 성사시키는 대-독일 포위망 파괴 외교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주1] 독일의 재군비 결정 1935년 3월 16일
3월 16일 히틀러는 프랑수아-퐁세 프랑스 대사를 접견하면서, 독일이 징병제를 실시하고, 55만에 달하는 36개 사단 병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 통보했다.
[주2] 스트레자 전선 1935년 4월 14일
Stresa Front
스트레자 전선은 이탈리아의 마지오레 호수 기슭에 있는 마을인 스트레자에서의 합의로, 프랑스 외무장관 피에르 라발, 영국 총리 램지 맥도널드, 이탈리아 총통 베니토 무솔리니가 1935년 4월 14일에 체결했다. 공식적으로는 스트레자 회담의 최종선언이라 불리며, 그 목표는 로카르노 조약의 재확인, 오스트리아의 독립이 3국 공통의 정책으로 유지될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3국은 또한 이후에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수정하려는 시도에 나설 경우, 이에 저항하기로 합의했다.
"무솔리니가 히틀러 견제에 나선 이유는?" - 1935년의 스트레자 전선 결성 배경은?
http://kk1234ang.egloos.com/2896295
[주3] 프랑스-소련 상호원조 조약
1935년 3월 27일
Franco-Soviet Treaty of Mutual Assistance http://kk1234ang.egloos.com/2896728
프랑스-소련 상호원조 조약은 중부유럽에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1935년 양국이 나치 독일을 포위할 목적으로 체결한 상호조약이다.
[주4] 히틀러, 평화적인 외교정책 선언
1935년 5월 21일
Hitler delivers greatest "peace" speech to Reichstag
히틀러는 다른 나라 혹은 민족을 침략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평화를 필요로 하고, 평화를 원한다! Germany needs peace and desires peace!”
로카르노 조약의 준수, 오스트리아 독립의 보장, 그리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규정한 비무장지대의 유지 등을 약속했다.
[주5] 독일측의 이같은 제안은 영국-독일 해군합의로 귀결되었다.
Anglo-German Naval Agreement
1935년 6월 18일
http://kk1234ang.egloos.com/2897223
덧글
이것으로 독일의 베르사유 조약 파괴를 막자는 스트레자 전선은 이미 파괴되었다고 무솔리니가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비시니아 침공에서, 영불이 이탈리아 제재에 동조하자,
무솔리니는 히틀러 쪽으로 투항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