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문제와 유럽의 불안, 1938년 유럽외교사

[체코]베네시-히틀러와 스탈린의 틈바구니에서


[제2차세계대전]
[체코 위기][주데텐란트]


체코 문제와 유럽의 불안


조선 경성- 동아일보 사설
1938년 9월 10일


파리평화회의 이후 현재와 같이 유럽 각국이 전쟁의 위기에 노출된 일은 일찌기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배상금문제, 독일의 재군비, 에티오피아 문제, 스페인 문제 등이 있어서 손에 땀을 쥐게하고 명암이 교차하기도 했지만,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개이는 것을 믿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연 그 정세를 달리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관측이 상반되었다. 우선 체코 문제가 얼마나 긴박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최근 독일이 130만명이나 동원한, 대전 이후 최초의 거대 군사훈련이 사태를 험악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감이 있고, 영국은 지난달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평화와 전쟁에 모두 대비하는 대책을 결정했고, 독일 주재 영국대사에게 독일을 체면을 손상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 평화적 해결을 위한 경고를 하라고 지시했고, 동시에 월터 런씨맨 Walter Runciman 경을 통해서 문제의 해결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유사시에, 프랑스-체코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궐기하는 프랑스에 대해서 무력원조를 하기로 하고, 북해에 대함대를 집중시키고 있다. 프랑스는 예비군과 귀대장병으로 동부 국경 마지노 요새의 수호를 충실히 하고 있고, 소련은 우크라이나의 상비군을 40만에서 75만명으로 증강하는 등, 관련 국가들이 긴장한 광경은 대전 전야를 방불케하는 것이다. 6일부터 시작된 뉘른베르크의 나치 당대회에서 히틀러 총통이 체코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불안을 준다고 할 것이다.


체코 정부와 주데텐 당의 교섭은 일시 중단상태에 있었는데, 영국의 랜씨맨 경의 알선으로 교섭이 재개되었고, 체코 정부는 지방자치안을 주데텐당측에 제출했고, 당이 이를 수락할 것이라는 설이 있었지만, 당은 4월말의 칼스바트에서의 8개조 요구안을 관철시키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히틀러 총통과 회담한 헨라인 당수는 주데텐 독일인들의 완전한 자치를 위해서 제3국이 관리하는 주민투표를 통해서 주데텐 지방의 귀속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체코 정부가 5일의 국무회의에서 최후의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사태가 완화될 것이라 전망 되었지만, 그것도 순간에 불과했고, 7일의 주데텐 당원과 체코 경찰과의 충돌로 사태는 매우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교섭도 중단되었다. 이처럼 체코 국내의 주데텐 문제는 그 배후에 각각 영국,프랑스,소련,독일이 있고, 가장 중요한 쟁점에서 자신만의 입장을 고집하는 까닭에 언제 분화구가 폭발할지 몰라 지금 유럽정국의 불안은 동요상태에 있는 것이다.


체코 문제의 화근은 그 건국초에 다수민족을 포용한 것에 이미 잠재되어 있었고, 독일이 주데텐 당을 통해서 동남쪽으로 진출하려는 것이나, 체코의 입장에서 보면, 주데텐 지역에서의 독일인의 완전한 자치 혹은 독일귀속은 주권의 무시이며 통일의 파괴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이 복잡하고 곤란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독일측 입장에서 보면, 독일은 범독일주의에 의거, 제3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나치 독일의 이상이고, 650만의 오스트리아를 이미 합병했기 때문에 360만의 체코내 독일인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국가 위신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하려고 노력 중인 것이다. 프랑스는 물론 영국의 입장에서, 체코의 철과 석탄이라는 중요 자원지대를 독일이 좌우하게 된다면 독일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유럽의 균형이 곧 파괴되고 만다고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현상유지의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요컨대, 체코내의 주데텐 독일인 문제는 국내적으로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국제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것이며, 또한 영국의 현상유지를 기반으로한 강경한 태도는 독일을 압박, 일시적으로 문제를 무사히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언젠가 또 폭발되고 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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