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동유럽의 고민:적은 누구인가?" 유럽외교사

"1차대전 이후 동유럽의 구조적 불안 요인은?"

[제2차세계대전]


1930년대 동유럽의 고민:적은 누구인가?


1930년대 중반, 동유럽에 대한 나치 독일의 침략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도, 동유럽 지역 국가들에서 반공주의와 소련의 야심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강했고, 이것이 집단안보 차원에서의 소련과의 군사협력의 걸림돌이 되었다. 이같은 소련에 대한 공포는 어느정도는 독일의 선동의 산물이기도 했다.


1930년대 동유럽 국제정치는 지역 독립을 즉각적으로 위협하는 적이 누구인가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었다. 많은 지역 국가들이 1917년과 1921년사이의 소련의 약화로부터 영토적 이익을 본 상황이었다. 따라서 동유럽 지배층이 공산주의를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제2차세계대전 직전까지도 그들은 나치 독일에 대한 집단안보를 위해서 소련군에게 길을 내주기를 주저했다. 그들은 일단 소련군이 자국 영토안으로 들어오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 우려했고, 적어도 과거 러시아 제국의 일부였던 곳에서 소련군이 쉽게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결국, 서양 정부들은 이같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불안을 공유했고, 동유럽 군소 국가들의 영토주권을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유럽 국가들에게 소련에 대해 모험적인 양보를 하라고 압박하기를 꺼렸다.


고민은 다음과 같았다 : 동유럽 정부들은 나치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 소련의 지원을 받는 것을 꺼렸다. 그렇다면, 집단안보가 막기를 원했던 독일의 침공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단지 소련의 피점령지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사이의 선택만이 남아있었다. 1939년의 서양은 1938년에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했던 식으로, 폴란드와 루마니아에게 집단안보를 위해서 소련에게 주권을 양보하라고 강압하기를 거부했다.


스탈린은 동유럽을 군사 점령해서 히틀러에게 선수를 쳐서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고는, 소련에게 독일과의 전쟁 부담을 전가시키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이를 서양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련의 실질적인 군사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소련의 헤게모니를 위해서 동유럽의 실질적 독립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상의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실패한 결과는 서로 관련이 있는 일련의 오해들이었다 : 스탈린은 서양이 히틀러와 맞서 싸울 의지가 부족하다고 보았고,영국의 군사력을 저평가했고, 프랑스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했다. 서양 정부들은 소련의 군사적 경쟁력을 저평가했고, 이데올로기적 상호적대 때문에 나치와 소련간의 화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모든 판단이 틀렸던 것이었다.


출처- Rothschild, Joseph. Return to diversity : a political history of East Central Europe since World War II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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