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국들의 분열로 독일이 본 이익은?" 유럽외교사


[자료] 베르사유조약과 독일영토 분할...


<1918년 말,전장에서 돌아온 독일군을 맞이하는 베를린의 인파. 베를린 시민들은 독일군이 패배하지 않았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전후 독일은 조약으로 인한 상대적인 이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제1차세계대전]
[베르사유 조약][베르사유 체제]
[전간기]


독일문제에 대한 승전국들의 분열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함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어 왔고, 이것 때문에 독일에서 나치즘이 성장했다는 주장이 있다. 아마도 베르사유 조약의 오류는 완전한 관용과 완벽한 파괴 사이의 타협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독일 통일을 파괴하거나 혹은 최소한 라인란트를 독일로부터 분리시키기를 원했고, 독일의 무장해제가 유지되고, 독일이 가까운 미래에 경제적으로 약한 상태로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이 이같은 프랑스의 목표에 반대했다. 그들은 프랑스의 요구가 지나치고, 비도덕적인 것이라 간주했을 뿐만아니라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모든 승전국들이 동의한 것은 만약 평화 조건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면, 독일이 소련측으로 투항할 수도 있고, 이로인해 공산주의가 중유럽에 침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프랑스의 목표는 영미의 견제를 받았다. 프랑스가 자신의 목표를 수정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영국과 미국도 양보를 해야만 했다.


결국 그 결과로 1919년 6월 28일에 탄생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을 불구로 만드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독일을 상대적으로 강한 상태로 남겨두었다. 특히 독일은 제1차세계대전의 전쟁부채 대부분을 지불하지 않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편, 키신저에 따르면,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의 독일 징벌적 조항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는 약점을, 독일에는 이익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전후 프랑스의 안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다음의 세가지 였는데, 이 중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 반독일 동맹의 결성, 독일 분할 시도, 독일과의 화해 시도.


반독일 동맹의 결성은 영국,미국이 거절했고, 러시아가 더이상 균형추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고, 독일연방식의 독일분할책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독일과의 화해는 너무 이르거나 혹은 너무 늦어 버렸다. 너무 늦어버린 것은 화해가 베르사유 조약과 모순되었기 때문이고, 너무 이른 것은 프랑스 여론이 아직 이를 받아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프랑스가 자신의 안보 환경 구축 노력에 실패한 반면, 전쟁 이후, 독일에게 유리한 지정학적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전쟁 이전, 독일은 서쪽과 동쪽에 강한 이웃국가들을 두고 있었다. 독일은 주요 강대국들과 충돌하지 않고는 영토를 확장할 수 없었다 - 프랑스,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르사유 조약 이후, 독일의 동쪽에서 이를 견제할 강대국이 사라졌다. 프랑스는 국력이 고갈되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러시아는 향후 수십년 동안 유럽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유럽대륙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라지게 되면서, 과거와 같은 세력균형을 재건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폴란드 독립도 프랑스에게 불리했다고 한다. 가령, 1916년초,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 Arthur James Balfour는 폴란드 독립이 다음 전쟁에서 프랑스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 "만약 폴란드가 독립 왕국이 되고, 러시아와 독일간의 완충국가가 된다면, 프랑스는 다음 전쟁에서 독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것이며, 폴란드의 중립을 침해하지 않고는 러시아가 프랑스를 도우러 올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1939년의 전략적 고민이 될 것이었다!


전통적인 지정학적 관점에서,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 프랑스는 독일을 양면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동쪽에서의 동맹국이 필요했다. 러시아가 이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유일한 국가였다. 하지만, 폴란드가 독일과 러시아를 분리시키면서, 러시아는 폴란드를 침범해야만 독일을 압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폴란드는 러시아의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결국, 베르사유 조약에 따른 폴란드 독립은, 이후 독일과 러시아에게 폴란드 분할이라는 충동만을 제공했고, 프랑스의 안보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키신저에 따르면, 러시아가 혁명의 소용돌이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물러나 있다가 1930년대에 복귀했을때, 소련 문제가 동유럽의 집단안보에 다음과 같은 역설을 제공했다고 한다. 베르사유 체제는 소련이 배제된 상황에서 탄생한 체제였기 때문에, 소련은 폴란드,루마니아와의 국경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로부터 위협을 느끼면서도,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의 지원을 원하지 않았다. 역설은 다음과 같았다 : 소련 없이는 동유럽의 집단안보가 군사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소련이 가담한 집단안보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결국 키신저의 지적처럼," 베르사유 체제의 설계자들은 독일을 물리적으로 약화시키려 노력했지만, 대신에 그들은 독일을 지정학적으로 강하게 만들었다."




덧글

  • 일화 2012/09/27 14:21 # 답글

    사실 폴란드를 왜 독립시켰는지가 가장 궁금합니다. 민족자결이라는 원칙을 밀어붙인 결과였던 건가요, 아니면 오-헝을 해체시키다보니 마땅히 설득력있는 대안이 없어서 그랬던 건가요?
  • 파리13구 2012/09/27 14:40 #

    폴란드의 형식적 독립에 대해서는 전쟁 동안에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국이 인정하기도 했고, 연합국측에서도 민족자결론을 주장하는 미국의 윌슨의 지원 덕분에, 폴란드 독립은 1918년 6월에 공식적으로 보장되었다고 합니다.
  • 일화 2012/09/27 15:06 #

    역시 윌슨이 원흉(?)이었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 토나이투 2012/09/27 14:40 # 답글

    전간기 독일 정세에 대하여 궁믁한점이 많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잘 읽고갑니다
  • 파리13구 2012/09/27 14:41 #

    감사합니다. ^^
  • 행인1 2012/09/27 17:27 # 답글

    어지간한 외교노선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정치지형도로군요.
  • 파리13구 2012/09/28 08:25 #

    그렇습니다.
  • 셔먼 2012/09/27 17:57 # 답글

    도스 안과 영 안을 통과시킨 것도 미국의 크나큰 실책이었을 겁니다.
  • 파리13구 2012/09/28 08:26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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